태극의 각성자 1화. 각성의 밤
서울의 밤은 언제나 밝았다.
한강 위로는 자동차 불빛이 긴 강물처럼 흘렀고, 빌딩 창문마다 아직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의 그림자가 떠 있었다. 도시 전체가 잠들지 않는 거대한 기계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한도윤은 강변북로 옆 인도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그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서른둘. 작은 보안 프로그램 회사에서 일했고, 매달 월세와 카드값을 걱정했다. 어린 시절 태권도를 배운 적은 있었지만, 그것도 오래전 일이었다. 지금의 그는 평범한 직장인에 가까웠다.
그날도 평범하게 끝나야 했다.
야근을 마치고 늦게 퇴근한 그는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하나를 사 먹고, 버스를 놓쳐 한강 쪽으로 걸어가던 중이었다. 피곤했고, 머리는 무거웠고, 내일 아침 회의 생각에 벌써부터 속이 답답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밀어.”
도윤은 발걸음을 멈췄다.
이어폰을 낀 것도 아니었다. 주변에는 산책하는 사람 몇 명, 자전거를 타는 남자, 벤치에 앉은 커플뿐이었다. 누군가 크게 말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목소리는 분명히 그의 머릿속에서 울렸다.
“지금 밀어. 아무도 모를 거야.”
도윤의 시선이 천천히 다리 난간 쪽으로 향했다.
검은 후드를 눌러쓴 남자가 한 여자의 뒤에 서 있었다. 여자는 휴대폰 화면만 보고 있었고, 자신이 위험한 위치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듯했다.
도윤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저 남자는 지금 여자를 밀 생각이었다. 도윤은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야!”
그가 소리치며 달려들었다.
후드 남자의 손이 여자의 등을 향해 뻗는 순간, 도윤이 그의 팔을 붙잡았다. 남자는 놀란 듯 몸을 돌렸다. 그 눈동자에는 당황보다 먼저 짜증과 살의가 떠올라 있었다.
그리고 도윤은 그때 보았다.
남자의 눈동자 뒤편에서 검은 연기 같은 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후드 남자는 도윤의 손을 뿌리치려 했다.
“뭐야, 너?”
도윤은 대답하지 못했다. 손바닥이 뜨거웠다. 정확히는 남자의 팔을 잡은 손에서 이상한 전류가 흘러들어오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 도윤의 머릿속으로 장면들이 쏟아졌다.
어두운 방. 벽에 붙은 여러 장의 사진. 빨간색으로 표시된 사람들. 그리고 조금 전 난간 앞에 서 있던 여자도 그 사진 중 하나였다.
도윤은 숨을 삼켰다.
“너… 이 여자 노리고 있었어?”
후드 남자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품 안에서 접이식 칼을 꺼냈다. 여자가 비명을 질렀다. 주변 사람들이 뒤로 물러났다.
“괜히 끼어들지 말았어야지.”
남자가 칼을 휘둘렀다.
도윤은 피하려 했지만 늦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칼끝이 도윤의 얼굴 앞에서 멈춘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보이지 않는 벽에 막힌 것처럼 더 이상 들어오지 못했다.
후드 남자도, 도윤도 얼어붙었다.
“이게… 뭐야?”
도윤의 손이 떨렸다. 손바닥 주위로 희미한 푸른 빛이 번지고 있었다. 빛은 아주 작았지만, 분명히 공기를 밀어내고 있었다.
남자는 겁에 질려 도망치려 했다.
그때 도윤의 머릿속에서 또 하나의 목소리가 울렸다.
“잡아.”
도윤은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남자의 몸이 허공에서 멈췄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붙잡힌 것처럼.
경찰이 도착했을 때, 후드 남자는 바닥에 엎드린 채 꼼짝하지 못하고 있었다. 도윤은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여자는 계속 울면서 도윤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하지만 도윤의 귀에는 아무 말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경찰이 이름과 연락처를 묻는 동안에도 그는 자신의 손바닥만 내려다봤다.
푸른 빛은 사라져 있었다.
하지만 몸 안 어딘가에서 이상한 울림이 계속 남아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도윤은 거울 앞에 섰다. 얼굴은 창백했고,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한도윤. 정신 차려.”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도윤은 망설이다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에서 낮고 차분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 한강에서 있었던 일, 잘 봤습니다.”
도윤은 굳어졌다.
“누구십니까?”
“당신은 이제 평범한 사람이 아닙니다.”
“장난 전화면 끊겠습니다.”
“한도윤 씨. 후드 남자의 팔을 잡았을 때, 그의 기억을 봤죠?”
도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남자는 계속 말했다.
“그 힘은 오래전부터 당신 안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깨어났습니다.”
“당신 누구야?”
잠시 침묵이 흘렀다.
“우리는 당신 같은 사람을 ‘각성자’라고 부릅니다.”
전화를 건 남자는 자신을 강태산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국가 소속도, 경찰도, 군인도 아니라고 했다. 다만 오래전부터 전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초능력자들을 추적해 온 비밀 조직의 일원이라고 했다.
도윤은 믿을 수 없었다.
“초능력자요? 지금 영화 찍습니까?”
“영화였다면 좋겠군요.”
강태산의 목소리는 진지했다.
“오늘 당신이 막은 남자는 단순한 범죄자가 아닙니다. 그는 국제 범죄 조직 ‘블랙 마스크’의 말단 요원입니다.”
“블랙 마스크?”
“돈, 무기, 인신매매, 사이버 테러, 정치 암살까지 손대는 조직입니다. 문제는 그들 안에도 각성자가 있다는 겁니다.”
도윤은 머리가 아파 왔다.
그는 그냥 회사를 다니고, 월세를 내고, 편의점 도시락을 먹으며 사는 사람이었다. 세계 범죄 조직 같은 말은 뉴스에서나 듣는 이야기였다.
“저는 그런 일에 낄 생각 없습니다.”
“이미 끼어들었습니다.”
강태산은 단호하게 말했다.
“당신이 오늘 구한 여자는 평범한 시민이 아닙니다. 국제 재판에 증언할 핵심 증인의 딸입니다. 블랙 마스크는 그녀를 제거하려 했습니다.”
도윤은 창밖을 바라봤다.
서울의 밤은 여전히 밝았다.
하지만 이제 그 빛 아래 숨어 있는 어둠이 보이기 시작했다.
통화가 끊기기 직전, 강태산이 말했다.
“내일 아침 7시. 남산 팔각정으로 오십시오. 오지 않으면 그들이 먼저 당신을 찾아갈 겁니다.”
도윤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 순간, 창문 밖 맞은편 건물 옥상에서 누군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검은 가면을 쓴 남자였다.
한강 위로는 자동차 불빛이 긴 강물처럼 흘렀고, 빌딩 창문마다 아직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의 그림자가 떠 있었다. 도시 전체가 잠들지 않는 거대한 기계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한도윤은 강변북로 옆 인도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그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서른둘. 작은 보안 프로그램 회사에서 일했고, 매달 월세와 카드값을 걱정했다. 어린 시절 태권도를 배운 적은 있었지만, 그것도 오래전 일이었다. 지금의 그는 평범한 직장인에 가까웠다.
그날도 평범하게 끝나야 했다.
야근을 마치고 늦게 퇴근한 그는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하나를 사 먹고, 버스를 놓쳐 한강 쪽으로 걸어가던 중이었다. 피곤했고, 머리는 무거웠고, 내일 아침 회의 생각에 벌써부터 속이 답답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밀어.”
도윤은 발걸음을 멈췄다.
이어폰을 낀 것도 아니었다. 주변에는 산책하는 사람 몇 명, 자전거를 타는 남자, 벤치에 앉은 커플뿐이었다. 누군가 크게 말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목소리는 분명히 그의 머릿속에서 울렸다.
“지금 밀어. 아무도 모를 거야.”
도윤의 시선이 천천히 다리 난간 쪽으로 향했다.
검은 후드를 눌러쓴 남자가 한 여자의 뒤에 서 있었다. 여자는 휴대폰 화면만 보고 있었고, 자신이 위험한 위치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듯했다.
도윤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저 남자는 지금 여자를 밀 생각이었다. 도윤은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야!”
그가 소리치며 달려들었다.
후드 남자의 손이 여자의 등을 향해 뻗는 순간, 도윤이 그의 팔을 붙잡았다. 남자는 놀란 듯 몸을 돌렸다. 그 눈동자에는 당황보다 먼저 짜증과 살의가 떠올라 있었다.
그리고 도윤은 그때 보았다.
남자의 눈동자 뒤편에서 검은 연기 같은 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후드 남자는 도윤의 손을 뿌리치려 했다.
“뭐야, 너?”
도윤은 대답하지 못했다. 손바닥이 뜨거웠다. 정확히는 남자의 팔을 잡은 손에서 이상한 전류가 흘러들어오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 도윤의 머릿속으로 장면들이 쏟아졌다.
어두운 방. 벽에 붙은 여러 장의 사진. 빨간색으로 표시된 사람들. 그리고 조금 전 난간 앞에 서 있던 여자도 그 사진 중 하나였다.
도윤은 숨을 삼켰다.
“너… 이 여자 노리고 있었어?”
후드 남자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품 안에서 접이식 칼을 꺼냈다. 여자가 비명을 질렀다. 주변 사람들이 뒤로 물러났다.
“괜히 끼어들지 말았어야지.”
남자가 칼을 휘둘렀다.
도윤은 피하려 했지만 늦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칼끝이 도윤의 얼굴 앞에서 멈춘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보이지 않는 벽에 막힌 것처럼 더 이상 들어오지 못했다.
후드 남자도, 도윤도 얼어붙었다.
“이게… 뭐야?”
도윤의 손이 떨렸다. 손바닥 주위로 희미한 푸른 빛이 번지고 있었다. 빛은 아주 작았지만, 분명히 공기를 밀어내고 있었다.
남자는 겁에 질려 도망치려 했다.
그때 도윤의 머릿속에서 또 하나의 목소리가 울렸다.
“잡아.”
도윤은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남자의 몸이 허공에서 멈췄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붙잡힌 것처럼.
경찰이 도착했을 때, 후드 남자는 바닥에 엎드린 채 꼼짝하지 못하고 있었다. 도윤은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여자는 계속 울면서 도윤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하지만 도윤의 귀에는 아무 말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경찰이 이름과 연락처를 묻는 동안에도 그는 자신의 손바닥만 내려다봤다.
푸른 빛은 사라져 있었다.
하지만 몸 안 어딘가에서 이상한 울림이 계속 남아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도윤은 거울 앞에 섰다. 얼굴은 창백했고,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한도윤. 정신 차려.”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도윤은 망설이다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에서 낮고 차분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 한강에서 있었던 일, 잘 봤습니다.”
도윤은 굳어졌다.
“누구십니까?”
“당신은 이제 평범한 사람이 아닙니다.”
“장난 전화면 끊겠습니다.”
“한도윤 씨. 후드 남자의 팔을 잡았을 때, 그의 기억을 봤죠?”
도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남자는 계속 말했다.
“그 힘은 오래전부터 당신 안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깨어났습니다.”
“당신 누구야?”
잠시 침묵이 흘렀다.
“우리는 당신 같은 사람을 ‘각성자’라고 부릅니다.”
전화를 건 남자는 자신을 강태산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국가 소속도, 경찰도, 군인도 아니라고 했다. 다만 오래전부터 전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초능력자들을 추적해 온 비밀 조직의 일원이라고 했다.
도윤은 믿을 수 없었다.
“초능력자요? 지금 영화 찍습니까?”
“영화였다면 좋겠군요.”
강태산의 목소리는 진지했다.
“오늘 당신이 막은 남자는 단순한 범죄자가 아닙니다. 그는 국제 범죄 조직 ‘블랙 마스크’의 말단 요원입니다.”
“블랙 마스크?”
“돈, 무기, 인신매매, 사이버 테러, 정치 암살까지 손대는 조직입니다. 문제는 그들 안에도 각성자가 있다는 겁니다.”
도윤은 머리가 아파 왔다.
그는 그냥 회사를 다니고, 월세를 내고, 편의점 도시락을 먹으며 사는 사람이었다. 세계 범죄 조직 같은 말은 뉴스에서나 듣는 이야기였다.
“저는 그런 일에 낄 생각 없습니다.”
“이미 끼어들었습니다.”
강태산은 단호하게 말했다.
“당신이 오늘 구한 여자는 평범한 시민이 아닙니다. 국제 재판에 증언할 핵심 증인의 딸입니다. 블랙 마스크는 그녀를 제거하려 했습니다.”
도윤은 창밖을 바라봤다.
서울의 밤은 여전히 밝았다.
하지만 이제 그 빛 아래 숨어 있는 어둠이 보이기 시작했다.
통화가 끊기기 직전, 강태산이 말했다.
“내일 아침 7시. 남산 팔각정으로 오십시오. 오지 않으면 그들이 먼저 당신을 찾아갈 겁니다.”
도윤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 순간, 창문 밖 맞은편 건물 옥상에서 누군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검은 가면을 쓴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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