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밀리 중 한 명은 고등학교 때부터 혼자 자취를 하던 녀석이었다.
집안 사정이 조금 복잡한 놈이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우리 패밀리들은 그 녀석의 자취방을 아지트처럼 드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녀석이 학교에서 더 가까운 곳으로 집을 옮긴다고 했다.
우리는 투덜거리면서도 결국 다 같이 이사를 도와주기로 했다.
“아, 진짜 귀찮게 하네.”
그렇게 욕을 하면서 짐을 나르고 있었는데, 귀신을 본다는 친구가 새로 이사할 원룸빌라 건물을 보자마자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 녀석은 건물을 한참 올려다보더니 이사하는 친구에게 물었다.
“여기 집값 싸냐?”
이사하는 친구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응. 어떻게 알았어?”
귀신을 보는 친구는 그 말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표정만 조금 굳어 있었다.
우리는 이사를 대충 끝낸 뒤, 바로 중국요리를 시켰다.
짜장면, 탕수육, 만두까지 깔아놓고 술판이 벌어졌다.

우리는 모범생과는 거리가 먼 학생들이었기에, 새집 정리보다는 술과 떠드는 일이 먼저였다.
그날 밤이었다.
패밀리 다섯 명 중, 귀신을 본다는 그 친구를 제외한 세 명이 동시에 가위에 눌렸다.
이상한 여자 하나가 방 안에 있었다고 한다.
그 여자는 똑바로 서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바닥에 나란히 누워 있던 우리들 위를 꿈틀거리며 기어 다니고 있었다고 한다.

나는 가위에 눌린 적도 없고 귀신을 본 적도 없는 인간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꿈에서 같은 장면을 봤다.
방 안을 기어 다니는 여자.
부러진 것처럼 뒤틀린 다리.
그리고 사람 위를 지나갈 때마다 느껴지는 축축하고 무거운 기운.
아침이 되자 친구들이 하나둘씩 가위 얘기를 꺼냈다.
“야, 나 어제 이상한 여자 봤다.”
“나도.”
“나도 봤는데?”
순간 방 안이 조용해졌다.
나도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도 꿈에서 봤어.”
우리 네 명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때 귀신을 보는 친구가 아무 말 없이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리고 거기에 이상한 문자를 적더니, 벽 높은 곳에 붙였다.
우리가 물었다.
“그게 뭐냐?”
그 친구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어릴 때 할머니가 알려준 건데, 귀신들이 싫어하는 말이래.”
그러면서 덧붙였다.
“귀신들은 이 문자를 보기만 해도 머리가 터질 것처럼 아프대.”

그 말을 들은 이사한 친구가 벌컥 화를 냈다.
“야, 괜히 겁주지 마!”
하지만 귀신을 보는 친구는 태연했다.
“이거만 붙여놓으면 아무 일 없을 거야.”
그 일이 있고 난 뒤, 신기하게도 이사한 친구는 더 이상 가위에 눌리지 않았다.
오히려 새집이 좋다며 만족해했다.
그런데 며칠 뒤부터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야, 나 요즘 자고 일어나면 귀가 너무 아파.”
처음엔 다들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잠을 잘못 잤겠거니 했다.
하지만 그 말이 계속되자 귀신을 보는 친구가 뭔가 이상하다고 했다.
결국 그 친구는 이사한 녀석의 집에서 하룻밤을 같이 자고 왔다.
다음 날, 귀신을 보는 친구는 이사한 녀석에게 딱 한마디만 했다.
“잘 때 이어폰 끼고 음악 조용히 틀어놔.”
“왜?”
“그냥 그렇게 해.”
그는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다.
나는 너무 궁금해서 귀신을 보는 친구를 붙잡고 계속 캐물었다.
결국 그는 다른 패밀리들에게는 절대 말하지 말라는 조건으로 이유를 알려주었다.
그 집에 있던 귀신은 다리가 완전히 부러져 있었다고 한다.
처음 우리가 가위에 눌렸을 때, 그 여자가 서 있지 못하고 기어 다녔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벽 높은 곳에 붙여둔 그 종이.
그 종이를 떼어내고 싶었지만, 여자는 다리가 부러져 일어설 수 없었다.
손을 뻗어도 닿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밤마다 벽에 매달리듯 기어 올라가, 닿지 않는 벽을 손톱으로 미친 듯이 긁고 있었다고 한다.
끼이이익.
끼이이이익.
마치 쇠를 긁는 듯한 소리.
그 소리가 밤새도록 방 안에 울렸고, 이사한 친구의 귀가 아팠던 이유도 바로 그 소리 때문이었다고 한다.
귀신을 보는 친구는 마지막까지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조만간 제풀에 지쳐서 나갈 거야. 걱정하지 마.”
그 말을 너무 태연하게 해서, 오히려 더 소름이 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