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때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은 달라졌을까.”
김지은 씨에게도 그런 인연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술 좋아하고, 노름 좋아하고, 싸움까지 자주 벌이는 남편이 문제라고만 생각했다. 남편은 하루가 멀다 하고 술집에서 사고를 쳤고, 새벽마다 걸려오는 전화는 대부분 술집 주인이나 경찰서에서 온 것이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은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왔고, 지은 씨는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소리를 질렀다.
“당장 나가.”
남편은 잘못했다며 매달렸지만, 그녀의 마음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마당에서 실랑이를 벌이던 중, 남편이 지은 씨의 팔을 붙잡고 늘어졌다. 그녀가 그 손을 뿌리치려는 순간, 둘은 함께 마당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바로 그때였다.
넘어진 남편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 방금 전까지 술에 취해 흐리멍덩하던 눈빛이 한순간에 날카롭게 변했다. 그는 무언가를 본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더니, 마당 한쪽에 있던 호미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지은 씨가 말릴 틈도 없이 바닥을 향해 힘껏 내리쳤다.
처음엔 남편이 또 미친 짓을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곧 지은 씨는 눈앞의 광경을 보고 숨이 멎을 뻔했다.
마당에는 커다란 검은 뱀 한 마리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남편이 내리친 호미에 목이 잘린 뱀은 엄청난 양의 피를 쏟아내며 몸을 뒤틀고 있었다.
남편은 그런 뱀을 내려다보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봤지? 내가 당신 목숨 살린 거야. 당신은 나 없으면 못 살아.”
그 말을 남기고 남편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집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지은 씨는 그 자리에서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뱀의 피가 마당에 번져가는 모습이 이상하리만큼 섬뜩했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아침부터 남편은 달라졌다.
평소 같으면 고봉밥 한 그릇쯤은 금방 비우던 사람이 밥상 앞에서 숟가락만 만지작거렸다. 얼굴빛도 좋지 않았다.
“밥 안 먹고 뭐 해?”
지은 씨가 묻자 남편은 신경질적으로 목덜미를 문질렀다.
“이상해. 자꾸 뭔가 목을 기어다니는 느낌이 들어. 숨 쉬는 것도 답답하고.”

처음에는 술이 덜 깬 줄 알았다.
그런데 남편의 목 주변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붉은 자국들이 가득했다. 손톱으로 긁은 것 같기도 하고, 무언가가 목을 감고 지나간 흔적 같기도 했다.
며칠 뒤, 남편은 또 술을 마시고 사고를 쳤다.
그날 밤 남편을 집까지 데려다준 사람은 남편의 대학 선배이자 절친한 친구인 진석 씨였다. 진석 씨는 남편이 사고를 칠 때마다 달려가 수습해주던 사람이었다. 지은 씨에게도 가족처럼 가까운 사람이었다.
“제수씨, 정말 죄송합니다. 이 녀석이 또 술 먹고 시비가 붙어서요.”
진석 씨는 미안한 얼굴로 남편을 방에 눕혀주었다. 그리고 아이들 맛있는 것이라도 사주라며 돈까지 건넸다. 지은 씨는 고맙다며 그를 배웅했다.
그런데 진석 씨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분명 방에 누워 있던 남편이 어느새 지은 씨 바로 앞에 서 있었다.
술에 취해 제대로 걷지도 못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남편은 아무 말 없이 우두커니 서서 자신의 목덜미를 계속 만지고 있었다.
“왜 그래? 또 목이 아파?”
지은 씨가 남편의 팔을 붙잡는 순간, 남편의 눈빛이 변했다.
그 눈은 사람의 눈 같지 않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게 쫓기고 있는 사람처럼 겁에 질려 있었다.

그날 이후 남편의 상태는 점점 심해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목덜미를 피가 맺힐 정도로 긁어댔다. 방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바닥을 뚫어져라 노려보다가, 갑자기 고개를 들고는 이렇게 물었다.
“무슨 소리 안 들려?”
그럴 때마다 지은 씨는 남편이 미쳐가는 것 같아 두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남편이 욕실에 들어간 뒤 한참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았다. 이상한 예감이 든 지은 씨는 조심스레 욕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끔찍한 광경을 보았다.
남편이 샤워기 호스를 자기 목에 감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사람처럼, 그는 스스로 목을 조르고 있었다.

지은 씨는 비명을 지르며 달려들어 호스를 잡아당겼다. 샤워기 호스가 뜯겨 나가고서야 남편은 욕실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남편의 반응이었다.
그는 자신이 방금 무슨 짓을 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멍하니 지은 씨를 바라보았다.
며칠 뒤, 진석 씨가 찾아왔다.
그는 남편에게 괜찮은 일자리가 생겼다며, 직접 데리고 가서 이야기를 해보겠다고 했다. 지은 씨는 오랜만에 안도했다. 남편이 일을 시작하면 이 지옥 같은 생활도 조금은 나아질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진석 씨를 따라 집을 나섰다.
그날 지은 씨는 아이들과 목욕탕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몸도 마음도 조금 풀린 듯했다. 집에 돌아와 잠시 눈을 붙였는데, 갑자기 목이 답답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차가운 한기가 방 안을 스치고 지나갔다.
눈을 뜬 지은 씨는 숨이 멎는 듯했다.


분명 진석 씨와 함께 나갔던 남편이 그녀 옆에 누워 있었다.
그런데 남편 위에는 새까만 형체가 올라타 있었다. 그것은 두 손으로 남편의 목을 짓누르고 있었다.
더 끔찍한 것은 그 형체에게 머리가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머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는 검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지은 씨는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때 방 한쪽에서 무언가 굴러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린 순간, 그녀는 보았다.
"죽여 줄까?

찢어진 입. 부릅뜬 눈.
잘린 머리 하나가 바닥에 놓인 채 지은 씨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것은 마당에서 남편이 죽였던 그 검은 뱀의 원한처럼 느껴졌다.
아니, 뱀인지 사람인지조차 알 수 없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였다.
지은 씨는 비명을 지르며 정신을 잃었다.
얼마 뒤, 전화벨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경찰이라고 했다.
경찰은 지은 씨에게 남편이 사망했다고 말했다.

남편은 진석 씨에게 살해당했다.
그것도 목을 가위로 찔려 죽었다고 했다.
지은 씨는 믿을 수 없었다.
진석 씨는 남편과 가족처럼 가까운 사람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남편을 죽일 이유가 없었다.
더 이상한 일은 부검 결과였다.
남편의 몸에는 피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고 했다. 사람의 몸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피가 빠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지은 씨는 며칠 전 마당에서 죽어가던 검은 뱀을 떠올렸다.
목이 잘린 채 엄청난 피를 쏟아내던 그 뱀.
남편의 목을 기어다니는 듯한 감각.
목 주변의 붉은 자국.
샤워기 호스로 스스로 목을 조르려 했던 일.
그리고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던 그날 밤의 머리 없는 형체.
지은 씨는 직접 진석 씨를 만나기 위해 구치소로 갔다.
하지만 진석 씨는 그녀를 보자마자 덜덜 떨었다.
그는 계속 미안하다고 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이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지은 씨는 그 말을 듣고 더 혼란스러워졌다.
진석 씨는 남편을 죽일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남편은 죽었다. 그것도 목을 찔린 채, 몸속의 피가 거의 빠져나간 상태로.
남편이 죽은 지 어느덧 30년이 흘렀다.
하지만 지은 씨는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한다.
남편이 호미로 내리찍었던 검은 뱀.
그때부터 시작된 목의 통증과 이상한 행동들.
그리고 남편의 마지막 죽음.
어쩌면 모든 일은 그날 이미 시작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남편은 정말 자신이 죽인 그 검은 뱀 때문에 목숨을 잃은 것일까.
아니면 그 뱀 뒤에, 사람이 알 수 없는 더 깊고 어두운 원한이 숨어 있었던 것일까.
지은 씨는 아직도 답을 알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날 마당에서 남편이 뱀을 죽인 뒤,
그들의 평범했던 집은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