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여름방학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이던 진주는 엄마와 함께 강원도에 있는 외할아버지 댁으로 향했다. 평생 고생만 하며 살아오신 외할아버지는 말년만큼은 공기 좋은 곳에서 편히 살고 싶다며 강원도의 한 집으로 이사를 가셨다.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진주는 들떠 있었다. 도시를 벗어나 산과 들이 보이는 길을 달리다 보니, 마치 여행을 가는 것 같았다. 엄마도 오랜만에 아버지를 뵌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 보였다.

마침내 도착한 외할아버지의 집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 오래된 집이긴 했지만 마당도 넓고, 방도 여러 개 있었다. 진주는 집을 보자마자 마음에 들었다.
“할아버지!”
진주가 반갑게 뛰어가자 외할아버지는 환하게 웃으며 맞아주셨다.
“아이고, 우리 똥강아지 왔어?”
그때까지만 해도 진주는 그 집에서 무서운 일을 겪게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은 대문을 넘자마자 시작됐다.
분명 닫혀 있던 방문 하나가 천천히 열렸다. 바람이 분 것도 아니었다. 누가 손을 댄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문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저절로 열렸다.

진주는 처음엔 낡은 집이라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곧 다른 방의 문도 열렸다. 또 다른 문도 열렸다. 마치 집 안에 있는 모든 문들이 누군가의 손에 의해 하나씩 열리는 것 같았다.
“뭐야?”
진주는 괜히 몸이 움츠러들었다.
엄마와 외할아버지가 짐을 옮기는 동안, 진주는 집 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방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단 하나, 굳게 닫혀 있는 방이 있었다.
다른 문들은 저절로 열릴 정도였는데 그 방만은 단단히 막혀 있었다. 문틈에는 신문지가 덧대져 있었고, 마치 일부러 안을 보지 못하게 해놓은 것처럼 보였다.
호기심이 생긴 진주는 문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신문지가 붙어 있는 부분을 살짝 건드렸다.
그 순간이었다.
“거기는 왜 건드려!”

외할아버지가 무서운 얼굴로 소리를 치셨다.
진주는 깜짝 놀라 얼어붙었다. 평소 다정하던 외할아버지가 그렇게 화를 내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진주가 울먹이자 외할아버지는 곧 표정을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그 방은 전 주인이 아직 짐을 못 옮긴 방이다. 그러니까 앞으로 절대 열어보지 마라. 알겠지?”
말은 그렇게 하셨지만, 진주는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외할아버지는 진주가 건드린 신문지 위에 다시 새 신문지를 꼼꼼하게 덧붙였다. 마치 그 안에 있는 무언가가 절대 밖으로 나오면 안 되는 것처럼.
그날 저녁, 진주는 엄마와 외할아버지와 함께 밥을 먹었다. 밥상은 푸짐했고,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집 안 어딘가에서는 계속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밤이 깊어지자 진주는 건너방에서 혼자 놀고 있었다. 그때 마당 건너 안방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진주야, 이제 그만 자야지.”
진주는 장난감을 내려놓고 안방으로 가려 했다. 그런데 복도를 지나 부엌 앞을 지나는 순간, 이상한 기척이 느껴졌다.
열려 있는 부엌문 안쪽.
그 어둠 속에 누군가 있었다.

진주는 숨이 턱 막혔다. 사람 같기도 하고, 그림자 같기도 한 무언가가 부엌 안쪽에서 자신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
진주는 울먹이며 안방으로 뛰어갔다.
“엄마, 나 방금 부엌 문틈에서 이상한 걸 봤어.”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런 게 어디 있어. 잘못 본 거야. 어서 자.”
하지만 옆에 있던 외할아버지의 반응은 달랐다. 외할아버지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거기에… 한 명만 있더냐?”
그 말에 진주는 더 무서워졌다. 엄마는 외할아버지를 나무라며 아이 겁주지 말라고 했지만, 진주는 외할아버지가 뭔가를 알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다음 날, 진주와 엄마는 외할아버지와 함께 장터에 갔다. 장터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런데 한 동네 사람이 엄마의 팔을 붙잡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 그 집에 계속 사신대요?”
엄마는 의아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버지가 이사 오신 지 아직 일주일밖에 안 됐는데요.”
그러자 그 사람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일주일이면 오래 버틴 거예요. 보통은 며칠 못 버티고 나왔거든.”
그 말을 들은 순간, 엄마의 얼굴이 굳어졌다. 외할아버지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화를 내고는 서둘러 진주와 엄마를 데리고 장터를 빠져나왔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왔을 때, 세 사람은 눈앞의 광경에 얼어붙고 말았다.
집 안의 문이란 문은 모두 열려 있었다.

방문, 부엌문, 창고문, 대문까지. 닫아두었던 문들이 전부 열려 있었다.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문들은 삐걱거리며 흔들렸다. 마치 집 안의 무언가가 계속해서 문을 열어젖히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는 더 이상 그 집에 있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아버지, 내일 우리 집으로 가요. 이 집 이상해요.”
하지만 외할아버지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이미 그 집에 모든 것을 걸고 이사 온 듯했다. 진주는 외할아버지의 얼굴에서 두려움과 고집이 뒤섞인 표정을 보았다.
그날 밤, 진주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집 안에는 차가운 공기가 감돌았다. 겨우 잠이 들었을 때쯤, 진주는 이상한 느낌에 눈을 떴다.
방문이 열려 있었다.
분명 닫고 잤던 문이었다. 진주는 떨리는 손으로 문을 닫으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복도 끝에 있는 그 방이 보였다.
외할아버지가 신문지로 막아두었던 방.
그 방문이 열려 있었다.

진주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외할아버지는 자리에 없었다. 혹시 외할아버지가 그 방에 들어간 걸까. 진주는 조심스럽게 방 쪽으로 걸어갔다.
“할아버지… 거기서 뭐 하세요?”
방 안에는 어두운 형체가 있었다. 처음엔 외할아버지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상했다. 그 형체는 바닥에 서 있는 것이 아니었다.
허공에 떠 있었다.
진주는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발이 굳어버린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그때, 등 뒤에서 서늘한 기척이 느껴졌다.
천천히 고개를 돌린 순간.
목이 꺾인 여자가 서 있었다.

여자는 기괴하게 웃고 있었다. 입가가 찢어질 듯 올라가 있었고, 눈은 진주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진주는 그대로 뒷걸음질 치며 안방으로 도망쳤다.
문을 닫으려 했지만 문은 쉽게 닫히지 않았다. 마치 바깥에서 누군가 문을 붙잡고 있는 것 같았다. 진주는 미친 듯이 문을 밀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문틈 사이에서 그 여자의 웃는 얼굴을 본 순간, 정신을 잃고 말았다.
다음 날, 엄마는 기절해 있는 진주를 발견하고 곧장 외할아버지의 집을 떠나기로 했다.
“아버지, 저희 그만 갈게요. 이 집 정말 아닌 것 같아요. 빨리 이사하시는 게 좋겠어요.”
외할아버지는 아쉬운 얼굴로 그들을 배웅했다. 하지만 멀어지는 외할아버지의 모습은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그리고 며칠 뒤.
이모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추석을 앞두고 큰이모가 외할아버지 댁을 찾아갔을 때, 외할아버지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집 안은 난장판이었다. 물건들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고, 누군가 집 안에서 미친 듯이 헤맨 흔적처럼 보였다.
장례식 날, 동네 어르신들이 찾아왔다. 그때 엄마와 이모들은 처음으로 그 집에 얽힌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오래전 그 집에는 한 딸이 살고 있었다고 했다. 그 딸에게는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지만, 부모가 그 결혼을 심하게 반대했다. 결국 딸은 절망 끝에 목숨을 끊었다.
그 후 부모 역시 딸을 잃은 죄책감과 비극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사람들의 말로는 가족들이 각자 다른 방에서 죽었다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그 집의 문들은 계속 열렸던 것이다.
딸이 갇혀 있었던 방의 문도, 가족들이 죽었다는 방의 문도, 그 집 안의 모든 문들이 마치 아직도 누군가를 부르듯 저절로 열렸던 것이다.
그 집에는 이후에도 여러 가족이 이사 왔지만, 모두 일주일을 버티지 못하고 떠났다고 했다. 진주의 외할아버지만이 그곳에 남았고, 결국 그 집에서 생을 마감했다.
장례를 마친 뒤, 엄마는 외할아버지의 유품을 챙기기 위해 다시 그 집으로 향했다. 친척들은 말렸지만, 엄마는 몇 가지 물건만 챙겨 오겠다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트렁크에 외할아버지의 물건들을 싣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갑자기 차 안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엄마는 당황해 차를 갓길에 세웠다. 뒤를 확인해보니 트렁크 문이 열려 있었다. 분명 닫았는데도, 트렁크 문은 다시 열렸다.
엄마가 다시 닫아도 조금 뒤 또 열렸다.
그 모습을 보던 진주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할아버지 집에서 보았던 열린 방문들이 떠올랐다. 닫아도 닫아도 다시 열리던 그 문들. 그리고 문틈 사이로 보였던 그 여자의 얼굴.
그때였다.
반대편에서 달려오던 차가 진주와 엄마가 타고 있던 차를 들이받았다.
진주는 그 사고로 오랫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사고 이후에도 한동안은 열린 문틈만 보면 그 여자가 다시 나타날 것 같아 두려움에 떨었다.
결국 엄마는 외할아버지의 집에서 가져온 유품들을 모두 태워버렸다.
이상하게도 그 뒤로 진주는 더 이상 그 여자를 보지 않았다.
27년이 지난 지금도 진주는 가끔 생각한다.
그 여자의 혼은 정말 그 집 안에 갇혀 있었던 걸까.
아니면 누군가가 문을 열고 자신을 꺼내주길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그리고 아직도 그 집 어딘가에서는, 닫힌 문이 천천히 열리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