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운전할 때 경적을 쉽게 누르지 못한다.
도로 위에서 누군가 갑자기 끼어들어도, 앞차가 이상하게 멈춰 서 있어도, 손이 경적 쪽으로 가다가 멈춘다.
그 짧은 “빵” 하는 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나도 모르게 룸미러와 뒷좌석을 확인하게 된다.
그날 내가 그 행동만 하지 않았어도, 지금처럼 작은 소리에도 겁먹으며 살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전라북도에 사는 김지훈이다.
그때 나는 4년 차 영업사원이었다.
그날은 새 거래처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세 달 동안 계약을 한 건도 따내지 못해서 마음이 바닥까지 내려가 있던 시기였다.
“이번 달에는 꼭 한 건 해야 하는데….”
그 생각만 하면서 운전하고 있는데, 부장님에게 전화가 왔다.
“어떻게 됐어? 계약할 것 같아?”
나는 한숨을 삼키며 대답했다.
“아직 고민해 보신다고 합니다.”
그러자 부장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몰아붙였다.
“김지훈 씨, 당신 차 기름 채우려고 출장 다니는 거 아니잖아. 잘 좀 해.”
순간 “그럼 부장님이 직접 하시든가요”라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나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네, 알겠습니다. 들어가십시오.”
전화를 끊고 나니 짜증과 허탈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러면서도 외진 도로라 속도를 내지는 못했다. 양옆으로는 나무가 빽빽했고, 사람도 차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툭.
차 밑에서 뭔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뭐야?”
급히 차를 세우고 내려 보니, 도로 위에 새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내 차에 치인 것 같았다.
“아이고… 미안하다. 미안해.”
괜히 마음이 찝찝해서 새를 도로 밖으로 치웠다.
그리고 담배라도 한 대 피우려고 주변을 둘러봤다.
그때 도로 바로 옆에 저수지가 있다는 걸 알았다.
물은 이상할 정도로 시커멓게 가라앉아 있었다.
수심이 깊은지 물 위로는 바람도 거의 일지 않았고, 고여 있는 물 특유의 냄새가 희미하게 올라왔다.
그곳에는 나 말고도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저수지 가장자리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남자였다.

나는 멍하니 그 남자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남자가 낚싯대를 내려놓더니,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발만 담그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남자는 아무 망설임도 없이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무릎까지.
허리까지.
가슴까지.
“저기요!”
나는 소리쳤다.
“저기요! 거기 위험해요!”
하지만 남자는 듣지 못하는 사람처럼 계속 물속으로 들어갔다.
눈앞에 거대한 물이 있고, 그대로 들어가면 죽을 게 뻔한데도 얼굴에는 아무 표정이 없었다.
그 모습이 너무 이상했다.
술에 취한 것도 아니고, 일부러 죽으려는 사람처럼 절박해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뭔가에 끌려가는 사람 같았다.
그러다 물속에서 솟아난 형체.

마치 조종하는 것 같았다.
“아, 저러다 죽겠다.”
나는 급히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있는 힘껏 경적을 눌렀다.
빵——!

그 소리가 저수지 주변에 크게 울렸다.
그제야 남자가 멈칫했다.
마치 잠에서 깬 사람처럼 허우적거리더니, 정신없이 물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그 순간,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나를 쳐다봤다.
정확히 말하면, 나를 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내가 자신을 방해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그 눈빛을 본 순간, 등골이 싸늘해졌다.
‘뭔가 잘못됐다.’
그때였다.
툭.
앞유리에 붉은 빗방울 같은 것이 떨어졌다.
툭.
툭.
툭.

처음에는 비가 오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하늘은 멀쩡했고, 도로도 젖지 않았다.
내 차 앞유리에만 붉은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보았다.
차 위에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젖은 머리카락을 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그 사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컸다.
차 위에 매달린 것처럼, 혹은 차 지붕 위에 엎드린 것처럼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러다 본능적으로 엑셀을 밟았다.
차가 튀어나가듯 앞으로 달렸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곳을 벗어났다.
한참을 달렸다.
아마 10분쯤 지났을 것이다.
저수지에서 꽤 멀어졌다고 생각했을 때, 그제야 뒤를 확인해 볼 용기가 났다.
‘설마 아직 붙어 있는 건 아니겠지?’
그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엄마였다.
나는 거의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엄마….”
“너는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어디야?”
엄마 목소리를 듣자 갑자기 살 것 같았다.
“나 지금 거의 집에 와 가. 근데 엄마, 나 좀 이상한 걸 봤어.”
“뭔데?”
“저수지에… 뭐가 있었어.”
말을 하려다 나는 멈췄다.
괜히 엄마를 걱정시킬 것 같았다.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야.”
엄마는 계속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둘러대며 통화를 이어 갔다.
그렇게 엄마와 전화를 하며 집으로 향했다.
분명히 그랬다.
나는 집 앞에 도착했다.
엄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집 앞에 나와 있는 것도 보았다.
그런데 그 순간, 차 안에 이상한 냄새가 확 퍼졌다.
오래 고여 썩어 가는 물에서 나는 듯한 지독한 물비린내였다.
“뭐야… 이 냄새….”
눈앞이 흐려졌다.
누군가 내 차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쿵쿵쿵.
“지훈아! 정신 차려!”
엄마 목소리였다.
“지훈아! 내 말 들려?”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숨이 멎을 뻔했다.
내 앞에는 집이 없었다.
엄마가 서 있던 집 앞도 아니었다.
시커먼 물.
나무들.
어둡고 축축한 공기.
나는 다시 그 저수지 앞에 있었다.

“내가 왜 여기 있어…?”
분명 엄마와 통화하면서 집에 왔는데.
분명 집 앞에 도착했는데.
내 차는 저수지 앞에 멈춰 있었고, 엄마는 창밖에서 울 것 같은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중에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는 더 끔찍했다.
그날 내가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엄마는 걱정이 돼서 나에게 전화를 했다고 했다.
그런데 전화를 받기는 받았는데, 내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고 했다.
대신 자동차가 달리는 소리 같은 것만 계속 들렸다고 했다.
엄마는 사고가 난 줄 알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하지만 내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때는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갑자기 입으로 경적 소리를 냈다고 했다.
“빵… 빵….”
그 소리를 듣고 엄마는 소름이 끼쳤다고 했다.
마치 내가 일부러 낸 소리가 아니라, 누군가 내 입을 빌려 경적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날 이후 나는 한동안 제정신이 아니었다.
집에 돌아온 뒤에도 이상한 일은 끝나지 않았다.
그날 밤이었는지, 아니면 며칠 뒤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집에 들어왔고, 거실에 동생이 앉아 있었다.
동생은 나를 보자마자 실실 웃었다.
“형, 귀신 봤다며?”
나는 짜증이 났다.
“지금 기분 별로니까 장난치지 말고 꺼져.”
그런데 동생은 계속 같은 말을 반복했다.
“왜? 저수지에 뭐 있었어?”
“뭘 봤어?”
“귀신 봤다며?”
꼭 녹음기를 틀어 놓은 것 같았다.
말투도 이상했고, 표정도 이상했다.
나는 더 화가 나서 소리쳤다.
“저리 가라고!”
그때 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거실 바닥에 물이 흥건했다.

“야, 물을 흘렸으면 닦아야 할 거 아니야.”
그제야 나는 동생의 몸을 제대로 보았다.
동생은 온몸에서 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다.
머리카락도, 옷도, 바지도 전부 젖어 있었다.
마치 방금 저수지에서 걸어 나온 사람처럼.
그 순간 다시 그 냄새가 올라왔다.
썩은 물비린내.
동생은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귀신 봤다며? 엄마가 걱정 많이 했어.”
나는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럼 지금 내 앞에 있는 건 정말 내 동생이 맞는 걸까.
아니면 저수지에서 따라온 그것이 동생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걸까.
그 일이 있고 일주일쯤 지났을 때였다.
전에 다녀왔던 거래처 사장님에게 갑자기 연락이 왔다.
계약을 하자는 전화였다.
나는 너무 기뻤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계약서는 언제 쓰는 게 좋으세요?”
그런데 사장님이 말했다.
“내가 해외 출장이 잡혀서 오늘밖에 시간이 없는데, 지금 올 수 있나?”
시계를 보니 저녁 8시였다.
너무 늦은 시간이었지만, 세 달 만에 잡은 계약을 놓칠 수는 없었다.
“네. 지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나는 부랴부랴 준비해서 차를 몰았다.
그리고 거래처 근처에 거의 도착했을 때, 다시 사장님에게 전화가 왔다.
“김 대리님.”
“네, 대표님. 거의 다 왔습니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 목소리가 이상했다.
“오늘 계약 없었던 걸로 할게요.”
나는 당황했다.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잠깐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들려온 말은, 사장님의 목소리 같지 않았다.
“그런데 왜 방해를 했어?”
손에서 힘이 빠졌다.
“여보세요? 대표님?”
전화는 끊겼다.
순간 너무 화가 났다.
장난을 치는 건가 싶었다.
짜증이 나서 차를 세웠다.
그런데 주변 풍경이 너무 익숙했다.
시커먼 물.
나무들.
축축한 공기.
그곳은 다시 그 저수지였다.

나는 내가 언제 그곳으로 온 건지 기억할 수 없었다.
그때 누군가 나를 불렀다.
“형!”
돌아보니 동생이 있었다.

“너가 왜 여기 있어?”
동생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형 찾으러 왔지. 한참 찾았잖아.”
그때 나는 동생에게 더 끔찍한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그동안 일주일째 밤마다 말도 없이 집을 나갔다고 했다.
그리고 새벽에 돌아올 때마다 옷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고 했다.
엄마는 내가 아무래도 저수지에 다녀오는 것 같다고 걱정했고, 동생은 나를 찾으려고 이곳까지 왔다고 했다.
나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밤마다 집을 나갔다고?
젖은 옷으로 돌아왔다고?
그 저수지에 왔다 갔다고?
믿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동생이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냈다.
“빵….”
처음에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빵… 빵….”
동생이 입으로 경적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는 얼어붙었다.
“야… 너 그 소리 뭐야?”
동생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멍한 얼굴로 저수지 쪽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야! 어디 가!”
동생은 멈추지 않았다.
“야! 거기 길 없어! 멈춰!”
동생은 아무 망설임도 없이 물속으로 들어갔다.

무릎까지.
허리까지.
가슴까지.
그 모습이 일주일 전 내가 보았던 낚시꾼과 똑같았다.
나는 미친 듯이 소리쳤다.
“야! 나오라고! 내 말 안 들려?”
동생은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저러다 죽겠다 싶어서, 나는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차가운 물이 다리를 감싸고, 허리까지 차올랐다.
나는 이를 악물고 동생에게 다가갔다.
가슴께까지 물에 잠긴 동생의 어깨를 낚아챘다.
“야!”
그 순간.
내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동생은 없었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저수지 위에는 나 혼자 서 있었다.

그때 머리 위로 물방울이 떨어졌다.
툭.
툭.
툭.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것이 있었다.
내 머리 위에서 물을 뚝뚝 흘리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젖은 머리카락.
가려진 얼굴.
길게 늘어진 몸.
그것은 마치 내가 물속으로 더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몸이 굳어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순간, 어디선가 귀를 찢는 경적 소리가 들렸다.
빵——!
“이봐요! 미쳤어요? 죽으려고 그래요!”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멀리서 한 남자가 차 안에서 미친 듯이 경적을 울리고 있었다.
그 남자는 나를 향해 계속 소리쳤다.
“빨리 나오세요! 위험해요!”
나는 물 밖으로 비틀거리며 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보았다.
나를 구해 준 그 남자 뒤에, 그것이 서 있었다.

그때 알았다.
내가 처음 저수지에서 구했던 그 낚시꾼.
그리고 나를 구해 준 그 남자.
그리고 나.
누군가가 경적을 울려 물속으로 들어가던 사람을 구하면, 그것은 구해 준 사람에게 붙는 것 같았다.
마치 원래 물속으로 끌려가야 할 사람의 운명이 다른 사람에게 옮겨 가는 것처럼.
나중에 엄마는 너무 답답한 마음에 친정 쪽에서 아는 무속인을 찾아갔다고 했다.
무속인은 엄마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람은 다 자기 운명을 타고 나는 건데, 아들이 그걸 바꿔 놨어.”
엄마가 무슨 뜻이냐고 묻자, 무속인은 다시 말했다.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렸어. 그게 화가 나서 해코지를 하는 거야.”
그 말을 듣고 엄마는 내가 정말 뭔가에 씐 줄 알았다고 했다.
내 몸에서는 계속 흙탕물 같은 냄새, 오래 고여 썩은 물 냄새가 났다고 했다.
그 일이 있은 지 6년이 지났다.
나는 아직도 그날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경적을 울려 구한 사람은 정말 살아난 걸까.
나를 경적으로 구해 준 남자는 그 뒤 어떻게 됐을까.
그날 그 저수지에서는 도대체 누구의 운명이 누구에게 넘어간 걸까.
그리고 지금도 도로 위에서 경적 소리가 들리면, 나는 가장 먼저 뒤를 돌아본다.
혹시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누군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지는 않은지.
혹시 차 안에 다시 그 지독한 물비린내가 차오르고 있지는 않은지.
나는 아직도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백곡지를 찾아간 윤시원.




백곡지 위치 장소.

충북 진천군 진천읍 건송리 26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