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비디오 가게에서 빌린 새까만 무제 비디오. 처음엔 모래폭풍뿐이던 화면 속에는 도끼를 든 남자가 끝없이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남자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내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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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형 체인점이 아니라, 오래된 비디오 가게에서 혹시나 숨겨진 명작 같은 비디오를 찾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 발견한 낡은 비디오 가게가 있어서 들어가 보기로 했다.

가게 안에 들어가자 오래된 비디오들이 빽빽하게 꽂혀 있었다. 나는 줄지어 놓인 비디오의 제목과 표지를 하나하나 훑어보며,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끌리는 물건을 찾고 있었다.
그렇게 제목들을 눈으로 옆으로 밀듯이 살펴보던 중, 구석 아래쪽에서 새까만 비디오 하나를 발견했다.
제목도 없었다.
그 비디오를 손에 들고 앞면과 뒷면을 살펴보았지만,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그저 완전히 검은색이었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 빌려 보기로 하고 계산대에 가져갔다.
그러자 점장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그 비디오를 보더니, 순간 멈칫하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이거 무슨 비디오예요?”
내가 묻자 아저씨는 잠시 말끝을 흐렸다.
“음… 이거 꽤 오래된 물건일 겁니다. 기억이 잘 안 나네요… 버리는 걸 깜빡했나… 정말 이거 빌려 가실 겁니까, 손님?”
뭔가 걸리는 듯한 말투였다.
마치 빌려주는 것을 꺼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거기서 ‘이건 뭔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곧바로 빌리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와 밥을 먹고 한숨 돌린 뒤, 그 새까만 정체불명의 비디오를 보기로 했다.
비디오 데크 입구에 테이프를 밀어 넣었다.
가콘, 하는 소리와 함께 비디오가 들어갔고, 나는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화면에는 지직거리는 모래폭풍만 나왔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계속 모래폭풍뿐이었다.
혹시 그냥 빈 비디오인 건가?
속은 건가 싶었다.
빌린 돈을 돌려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낡은 비디오 가게에 수상쩍은 아저씨라니. 버려야 할 물건을 까먹고 그냥 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포기하고, 리모컨으로 꺼내기 버튼을 눌렀다.
그 순간, 갑자기 화면이 팟 하고 바뀌었다.
영상이 시작되었다.
홈비디오로 찍은 듯한 조잡한 화질이었다.
회사명도, 제목도 나오지 않았다.
화면에는 바깥 풍경이 찍혀 있었다.
어딘가 본 적 있는 것 같은, 지극히 평범한 주택가였다.
다만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벌거벗은 남자가 보도를 엄청난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새까만 머리카락이 거센 맞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입은 반쯤 벌어져 있었고, 눈은 충혈된 채 크게 뜨고 있었다.
손에는 도끼를 들고 있었다.
그 도끼를 앞뒤로 격하게 흔들며, 남자는 그저 계속 달리고 있었다.
달리고 있었다.
끝없이 달리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비디오지?
혹시 학생들이 만든 창작 영상인가?
괜히 돈만 날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꽝을 뽑은 것 같은 후회가 밀려왔다.
그래도 일단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하지만 영상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남자는 속도를 줄이지도 않고, 숨이 차는 기색도 없이 계속 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30분쯤 지났을 때였던 것 같다.
나는 문득 이상한 위화감을 느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상한 것은 남자가 아니라,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주변 건물들이었다.
낯이 익었다.
분명 본 적 있는 풍경이었다.
맞다.
이곳은 내가 사는 동네였다.
그것도 우리 집 근처였다.
남자가 내가 사는 동네를 달리고 있었다.
조금 무서워졌다.
하지만 곧 더 무서운 사실을 깨달았다.
남자가 꺾는 골목마다, 전부 우리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렇게 남자는 결국 우리 집 앞 도로로 나왔다.
그리고 우리 집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미 눈과 코앞이었다.
설마 우리 집에 올 리는 없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너무나 쉽게 깨졌다.
곧 영상 속 남자가 문 앞에서,
쾅쾅쾅.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1층 현관 쪽에서도 똑같이 들려왔다.
쾅쾅쾅.
내 방은 2층에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나는 완전히 패닉에 빠졌다.
하지만 남자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격하게 문을 두드렸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문고리를 덜컥덜컥 흔들기 시작했다.
아까 집에 돌아왔을 때 분명히 문을 잠갔기 때문에 열릴 리는 없었다.
그런데도 남자는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미친 사람처럼 문고리를 계속 돌렸다.
덜컥덜컥덜컥덜컥.
그리고 마침내 남자는 들고 있던 도끼를 치켜들었다.
쾅!
도끼가 문에 박히는 소리가 났다.
위험했다.
저놈은 진심이었다.
문을 부수려는 것이었다.
그 뒤로 남자는 몇 번이고 도끼를 문에 내리쳤다.
결국 문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남자는 그 구멍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철컥, 하고 잠금장치를 풀었다.
내 공포는 한계까지 치솟았다.
나는 벌벌 떨면서 이불을 뒤집어쓴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화면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남자는 거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틀림없이 나를 찾고 있었다.
1층의 모든 문을 열어 보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확인을 끝낸 것인지, 남자는 다시 현관 쪽으로 향했다.
제발 그대로 돌아가라.
나는 필사적으로 빌었다.
하지만 그 기도는 허무하게 무너졌다.
남자는 계단 쪽으로 발을 돌렸다.
한 계단.
또 한 계단.
남자가 올라올 때마다 내 방 바깥쪽에서,
툭.
툭.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남자는 2층에 도착했다.
먼저 가까운 빈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바로 내 방 옆방이었다.
발소리가 너무도 현실적으로 들렸다.
화면 속 남자는 방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나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방을 다 뒤진 뒤, 마침내 내 방 앞에 섰다.
나는 공포로 몸이 굳어, 이가 딱딱 부딪힐 정도였다.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 같았다.
제발, 그냥 잠에서 깨면 꿈이었다고 해 줘.
남자가 내 방 문고리에 손을 올렸다.
그 순간 나는 내 방 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문고리가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그때 리모컨을 쥐고 정지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방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누군가 들어올 기척도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공포가 조금씩 가라앉았을 무렵, 나는 용기를 내어 방 밖으로 나갔다.
계단을 내려가 현관을 확인했다.
부서졌어야 할 문은 원래대로 멀쩡했다.
열쇠도 제대로 잠겨 있었다.
혹시 몰라 모든 방을 뒤져 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나는 곧바로 그 비디오 가게로 가서 테이프를 돌려주려고 했다.
하지만 가게에는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문은 닫혀 있었다.
그 뒤로도 나는 매일 그 가게에 찾아갔다.
하지만 결국 그곳은 ‘임대’라고 적힌 빈 점포가 되어 있었다.
만약 그때 내가 정지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면,
지금쯤 나는 어떻게 되어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