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구포역에 떠도는 괴담들
부산 구포역 주변에는 오래전부터 이상한 이야기가 떠돈다.
비 오는 날이면 선로 근처에 나타난다는 여자, 밤마다 들린다는 열차 소리, 그리고 사고 이후 사라지지 못한 사람들의 그림자.
누군가는 직접 봤다고 하고, 누군가는 가족에게 들었다고 한다.
확실한 것은 하나다.
구포역 근처에 오래 산 사람들 중에는 밤이 깊은 뒤 선로 쪽을 일부러 보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머리가 반밖에 없는 여자
내가 직접 겪은 일은 아니다.
어렸을 때 사촌 형님에게 들은 이야기다.
당시 사촌 형님은 구포역 근처에 살고 있었다고 한다.
밤이 깊으면 가끔 이상한 열차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분명 기차가 지나갈 시간도 아니고, 창밖을 봐도 선로 쪽은 조용한데, 멀리서 철컹철컹 쇳소리가 들려왔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착각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기차역 근처에 살면 원래 그런 소리가 들릴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 밤, 사촌 형님은 창문 쪽에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누가 자신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고 한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을 때, 창밖에 여자가 서 있었다.
그 여자는 가만히 사촌 형님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데 얼굴이 이상했다.
머리가 반밖에 없었다고 한다.
얼굴 한쪽은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나머지 한쪽은 뭉개진 듯 사라져 있었다.
그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창문 너머에서 형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촌 형님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몸도 움직이지 못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너무 무서워서 울면서 잠도 제대로 못 잤던 기억이 있다.
그때 사촌 형님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구포역 쪽은 밤에 창밖 오래 보면 안 된다.”
“넌 내 아들이 아니야”
이 이야기는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에게 들은 이야기다.
선생님에게는 아주 친한 친구가 있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대학 동기이자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고시 준비를 하던 시절, 두 사람은 1년 동안 구포역 근처 모텔에서 함께 지냈다고 한다.
그 모텔은 선생님의 어머니가 운영하시던 곳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방 하나를 얻어 자취하듯 생활했다.
둘은 친했지만 성격은 조금 달랐다.
특히 선생님의 친구분은 술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주량도 세고,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돌아오는 일이 잦았다.
1995년 5월쯤이었다고 한다.
날씨가 포근했던 어느 밤, 친구분이 늦은 시간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선생님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또 어디서 술 마시고 있겠지.’
친구분에게는 열쇠도 있었기 때문에 굳이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선생님은 먼저 잠이 들었다.
그런데 친구분은 새벽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아침 6시가 되어서야 방으로 들어왔다.
친구분은 들어오자마자 이상한 말을 했다.
“마, 어제 길바닥에서 술 먹고 잤는데 누가 나를 안아줬는가, 진짜 포근하더라. 니는 그 기분 모를 기다.”
선생님은 어이가 없었다.
“니가 밖에서 퍼자더만 정신이 나갔구마. 시끄럽고 씻고 나갈 준비나 해라.”
친구분도 그냥 웃고 넘겼다고 한다.
둘 다 그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친구분은 또 술을 마시러 나갔고, 밤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선생님은 이번에도 먼저 잠이 들었다.
새벽 5시쯤이었다.
쿵쿵쿵.
누군가 방문을 거칠게 두드렸다.
“문 열어라! 빨리 문 좀 열어라!”
선생님이 놀라서 문을 열자, 친구분이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서 있었다.
숨을 헐떡이고 있었고,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친구분은 방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말했다.
“마, 정호야. 그때 내를 안아준 기, 귀신이었는갑다.”
선생님이 물었다.
“뭐라카노? 뭐가 귀신인데?”
친구분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는 진짜 포근했거든. 누가 나를 안아주는 느낌이었는데, 오늘은 미치는 줄 알았다.”
그날도 친구분은 술에 취해 구포역 근처 길을 걷고 있었다고 한다.
몸이 너무 피곤해서 잠깐 길가에 누웠다.
술기운도 있고, 몸도 무겁고, 눈꺼풀도 점점 감겼다.
그런데 누워 있던 중, 귀 옆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지나가는 사람의 말소리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 소리는 바로 귀에 대고 속삭이고 있었다.
“넌 내 아들이 아니야.”
친구분은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목소리는 계속 반복됐다.
“넌 내 아들이 아니야.”
“아들이 아니야.”
“내 아들이 아니야.”
목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마치 누군가 친구분의 귀 바로 옆에 입을 대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갑자기.
“아아아아악!”
여자의 비명이 귀를 찢을 듯 터졌다.
친구분은 술이 한순간에 깼다.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모텔까지 뛰어왔다고 한다.
친구분은 덜덜 떨며 말했다.
“그날 나를 안아준 귀신이, 내가 자기 아들인 줄 알았던 거 아이가. 근데 오늘은 아닌 걸 알아본 기다.”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분은 구포역 근처 모텔을 나갔다.
그리고 서면에 있는 고시원으로 옮겼다고 한다.
그 뒤로는 다시는 그 길에서 술에 취해 눕지 않았다고 한다.
비 오는 날의 여자와 얼굴 없는 아기
구포역 주변에는 기찻길 양옆으로 오래된 민가들이 이어져 있는 곳이 있다.
새 건물이라기보다는 낡고 오래된 집들이 줄지어 있는 분위기라고 한다.
구포 열차 사고 이후로, 비가 오는 날이면 그 주변을 꺼리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밤늦게 비가 내리는 날에는 더 그랬다.
어느 비 오는 날이었다.
한 사람이 구포역 근처 길을 걷고 있었다.
앞쪽에는 한 여자가 비를 맞으며 걸어가고 있었다.
여자는 우산을 쓰고 있지 않았다.
옷은 젖어 있었고, 품에는 아기를 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처음에는 별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비를 맞는 모습이 이상하긴 했지만, 누군가 사정이 있겠거니 했다.
그 사람은 여자를 앞질러 지나가며 무심코 옆을 바라봤다.
그 순간 온몸이 굳었다.
여자가 안고 있던 아기에게 얼굴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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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도, 코도, 입도 없었다.
그냥 매끈하게 뭉개진 살덩어리 같은 것이 여자의 품에 안겨 있었다고 한다.
더 이상한 것은 여자의 팔이었다.
아기를 받치고 있어야 할 오른팔이 없었다.
어깨 아래로 아무것도 없는데, 아기는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받쳐진 것처럼 여자의 품에 안겨 있었다.
그 사람은 그대로 고개를 돌리고 빠르게 걸었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비 오는 날 구포역 근처에서 아이를 안은 여자를 보면, 절대 가까이 가지 말라는 말이 있다.
얼굴이 뭉개진 여자와 발목 없는 사람들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구포역 부근 기찻길 양옆 민가 사이에는 신호대가 없는 건널목 같은 곳이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 한 사람이 그 길을 건너려 했다.
맞은편에는 여자가 서 있었다.
긴 치마를 입고 우산을 쓰고 있었다.
여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냥 선로 너머에 가만히 서 있었다.
처음에는 기차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별생각 없이 기찻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이상했다.
여자는 우산을 쓰고 있는데도 얼굴을 거의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일부러 얼굴을 가리는 것 같기도 했다.
기찻길을 지나 여자의 옆을 스치듯 지나가던 순간, 그 사람은 보게 됐다.
여자의 얼굴은 뭉개져 있었다.
사람 얼굴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다.
눈과 코와 입의 위치가 흐트러져 있었고, 마치 강한 충격을 받은 것처럼 얼굴 전체가 일그러져 있었다.
그 사람은 비명을 삼키고 그대로 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그 주변에서는 여자를 본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비 오는 날이면 발목이 없는 사람들을 봤다는 이야기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멀리서 보면 그냥 사람이 걸어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가까이서 보면 발목 아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소리 없이 움직였고, 비에 젖은 길 위를 미끄러지듯 지나갔다고 한다.
구포역 근처에서는 비 오는 날 선로 주변을 오래 바라보지 말라는 말이 있다.
뭔가를 본 뒤에는, 그것도 당신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나가지 않는 열차 소리
구포역 근처 민가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는 이상한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밤 10시가 지나 잠자리에 들면, 가끔 집안이 덜컥거린다고 한다.
덜컥.
덜컥.
덜컥.
마치 기차가 가까워질 때 집이 흔들리는 것 같은 느낌이다.
처음에는 누구나 그렇게 생각한다.
‘아, 이제 곧 기차가 지나가겠구나.’
구포역 근처에 사는 사람이라면 기차 소리와 진동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집이 조금 흔들리거나 창문이 떨려도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하지만 이상한 점은 그다음이다.
한참이 지나도 기차가 지나가지 않는다.
분명히 멀리서 열차 소리는 들린다.
쇳바퀴가 레일 위를 긁는 소리도 들리고, 집안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느낌도 있다.
그런데 창밖을 보면 아무것도 없다.
선로는 조용하다.
불빛도 없다.
기차도 지나가지 않는다.
그런데 소리만 계속 들린다.
철컹.
철컹.
철컹.
가까워지는 것 같다가도 멀어지고, 멀어지는 것 같다가도 다시 가까워진다.
어떤 사람은 그 소리를 듣고 창문을 열어봤다고 한다.
밖은 조용했고, 비도 오지 않았고, 선로 위에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창문을 닫고 다시 누우면, 또 들렸다.
덜컥.
덜컥.
덜컥.
마치 보이지 않는 열차가 그 집 앞을 지나가는 것처럼.
그래서 구포역 근처에 오래 산 사람들 중에는 밤늦게 들리는 열차 소리를 일부러 확인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기차가 지나가지 않았는데도 들리는 열차 소리.
그 소리가 정말 기차 소리인지, 아니면 오래전 그곳을 떠나지 못한 누군가의 마지막 소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부산 구포역 무궁화호 열차 전복 사고
부산 구포역 사고는 1993년 3월 28일 오후 5시 30분쯤, 서울에서 부산으로 향하던 제117호 무궁화호 열차가 부산 구포역 인근에서 탈선·전복되며 수많은 사상자를 낸 대형 철도 참사이다. 당시 열차는 구포역 도착을 얼마 남기지 않은 상태였고, 구포역 북쪽 부근 경부선 선로를 달리고 있었다. 여러 기록과 회고 기사에서는 이 사고로 78명이 숨지고 198명이 다친 것으로 정리하고 있다.
사고가 일어난 곳은 단순한 급커브나 기관사의 과속 때문에 위험해진 구간이 아니었다. 문제는 선로 아래 지반이었다. 당시 한국전력이 고압선 지중화 공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철로 아래쪽으로 터널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고, 이 공사는 철도청과 충분한 협의 없이 진행된 것으로 전해진다. 시공 과정에서 발파와 굴착이 이루어졌고, 그 영향으로 철로를 떠받치던 지반이 약해지면서 노반이 내려앉았다. 결국 열차가 지나가던 순간 선로 아래가 꺼졌고, 달리던 무궁화호는 그대로 중심을 잃었다.
당시 열차는 시속 약 85km로 달리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기관사는 앞쪽 선로의 이상을 발견하고 급제동을 시도했지만, 이미 열차를 멈추기에는 거리가 부족했다. 무거운 열차는 한순간에 멈출 수 없었고, 선로가 무너진 지점을 통과하면서 기관차와 객차 일부가 탈선했다. 일부 객차는 전복됐고, 충격을 받은 객차는 심하게 부서졌다. 해외 보도도 당시 선로 일부가 붕괴되면서 기관차가 터널 쪽으로 빠지고 객차 여러 량이 탈선·전복됐다고 전했다.
사고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객차 안에 있던 승객들은 충격으로 튕겨 나가거나, 뒤틀린 좌석과 철제 구조물 사이에 갇혔다. 무궁화호는 장거리 이동객이 많았고, 주말 저녁 시간대였기 때문에 가족 단위 승객과 부산으로 향하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열차가 뒤집히고 객차가 찌그러진 상태에서 구조대가 도착했지만, 사고 규모가 워낙 컸기 때문에 구조 작업은 쉽지 않았다. 생존자들은 부서진 객차 사이에서 구조를 기다려야 했고, 현장은 비명과 구조 요청, 사이렌 소리로 뒤섞였다고 한다.
구포역 사고가 더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이 참사가 ‘예상하기 어려운 자연재해’가 아니라, 부실한 공사 관리와 안전 절차의 붕괴에서 비롯된 인재였다는 점이다. 철로는 열차가 수백 명의 승객을 태우고 달리는 기반 시설이다. 그 아래에서 굴착이나 발파 공사를 한다면 철도 당국과의 협의, 지반 안정성 조사, 보강 작업, 운행 통제 같은 안전 절차가 반드시 따라야 한다. 하지만 당시 사고는 그런 기본적인 안전 관리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을 때 어떤 결과가 벌어지는지를 보여준 비극적인 사례로 남았다.
사고 이후 책임 문제도 크게 다뤄졌다. 공사를 발주하고 시공·하청을 맡은 관계자들, 철도 안전 관리 책임 등이 사회적 논란이 됐다. 구포역 사고는 1990년대 한국 사회에서 반복되던 대형 안전사고 중 하나로 기억된다.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와 함께 당시 한국 사회의 압축 성장 뒤에 가려져 있던 부실시공, 관리 소홀, 안전 불감증을 드러낸 사건으로 자주 언급된다.
이 사고는 단순히 열차 한 대가 탈선한 사건이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평범한 일요일 저녁, 목적지에 거의 다다른 순간 목숨을 잃었다. 구포역은 부산 시민들에게 익숙한 교통 공간이었지만, 1993년 3월 28일 이후 그 이름은 한동안 참사의 기억과 함께 불렸다. 특히 구포역 주변에 떠도는 괴담이나 목격담도 이 사고의 충격과 무관하지 않다. 많은 사람이 희생된 장소에는 시간이 지나도 설명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따라붙기 마련이고, 구포역 주변의 귀신 이야기 역시 실제 참사의 기억 위에 덧씌워진 도시괴담처럼 전해져 왔다.
구포역 사고가 남긴 가장 큰 교훈은 철도와 같은 공공 기반 시설에서는 작은 안전 무시가 곧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선로 위를 달리는 열차만 안전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선로 아래의 지반, 주변 공사, 관리 체계, 책임 구조까지 모두 안전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곳의 균열이 결국 보이는 참사로 터져 나온 사건이 바로 부산 구포역 열차 전복 사고였다.
오늘날 구포역은 다시 평범한 역으로 기능하고 있지만, 1993년 그날의 사고는 한국 철도 역사에서 가장 아픈 참사 중 하나로 남아 있다. 누군가에게는 기록 속 사건이고, 누군가에게는 가족을 잃은 날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부산 구포역이라는 이름을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오래된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