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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보는 할머니와의 인터뷰, 혼백과 원귀에 대한 기묘한 이야기

모아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추천 0 비추천 0 댓글 0 조회수 115 작성일 2026-06-07 13:30:25 수정일 2026-06-07 13:30:25
전문 주소 https://moasa.co.kr/horror/166

대략 5년 전쯤이었다.


부산 연산동에 한때 꽤 유명했다는 할매가 한 분 있었다.

한 6년 정도 신점을 보다가, 어느 순간 그 힘이 다했다고 했다. 신점 보는 사람들도 신이 왔다 갔다 한다고들 하는데, 그 할매도 그런 경우였던 모양이다.


지금은 점을 본격적으로 보지는 않고, 산 근처에 살면서 공양기도 올리고, 소일거리처럼 가끔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주며 심심풀이로 점을 봐주는 정도라고 했다.


그때 나는 한참 일이 안 풀리던 시기였다.

하는 일마다 꼬이고, 돈은 안 모이고, 마음은 조급했다. 그 무렵에는 주역이니 관상이니 하는 것에 꽂혀 있었다. 그때는 진짜 그런 것들이 미래를 보여주는 학문이라고 믿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었지만, 그때는 돈이 곧 행복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어렵게 수소문해서 그 할매를 찾아갔다.


연산동이 몇 동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연산동 자체가 워낙 크다. 택시를 타고 골목길을 몇 번이나 돌고 돌아 산 입구 근처까지 올라가니, 겨우 그 집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니 할매가 없었다.


그냥 무작정 기다렸다.

한 시간, 두 시간쯤 지났을까. 드디어 할매가 돌아왔다.


나는 보자마자 말했다.


“할매님, 제가 복채 3만 원 드릴 테니까 제 점 말고… 귀신 본다는 이야기 좀 해주시면 안 됩니까?”


그러자 할매가 깔깔 웃었다.

후덕하게 생긴 분이었는데, 묘하게 무서운 느낌이 있었다. 한쪽 눈이 살짝 사팔처럼 보여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할매는 일단 들어오라고 했다.

 

귀신 보는 할머니와의 인터뷰, 혼백과 원귀에 대한 기묘한 이야기.png


안으로 들어가니 무슨 차를 한 잔 내줬다.

쓴맛이 강했고 솔직히 맛은 없었다. 그래도 예의상 맛있는 척 마셨다.


그런데 할매가 나를 빤히 보더니 말했다.


“맛없으면서 맛있는 척하지 마라.”


순간 등골이 서늘했다.


내가 놀라서 물었다.

 


“헉… 할매님, 제 마음도 읽으십니까?”


그러자 할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도 이거 맛없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그렇게 분위기가 조금 풀리고, 할매는 귀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주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수첩에 휘갈기듯 받아 적었다. 나중에 방 정리를 하다가 그 수첩 조각을 발견했고, 기억나는 대로 내용을 정리해본다.



“귀신은 존재합니까?”



“있다. 그런데 없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눈, 코, 입이 다 달린 귀신은 없다. 그런데 사람이 죽으면 혼백이라는 것이 남는다. 혼은 죽은 자리에 남고, 백은 우주로, 자연으로 떠돈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귀신은 죽은 사람의 ‘모습’ 그 자체라기보다는, 죽은 자리에 붙들린 혼과 떠도는 백에 가깝다는 말이었다.


 

1.png


“그럼 원한을 가진 귀신은 뭡니까?”


“그대로다. 억울하게 사고를 당해 그 자리에서 죽은 사람은, 그 자리에 혼이 붙들려 있다. 백은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떠돈다. 그런데 가끔은 그 백이 생전 모습 그대로 나타날 때가 있다. 나 같은 점받이들에게는 그런 게 이미지처럼 보인다.”

 

 

 


“귀신 중에 좋은 귀신, 나쁜 귀신도 있습니까?”


“대체로 조상귀가 나쁜 게 많다.”



“조상귀가요?”


“생전에 못한 걸 자손에게 풀려고 한다. 자손을 괴롭히고 해치는 것들이 있다.”


“왜 그렇습니까?”


“깨닫지 못해서다.”

 


“뭘 깨닫는다는 겁니까?”


“죽고 사는 건 하늘의 뜻이다. 설령 억울하게 죽어도 그것 또한 팔자다. 죽음도 인생의 일부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나는 할매에게 신점에 대해서도 물었다.

 

 


“할매는 귀신점 보는 겁니까? 귀신이 몸 안에 들어오는 겁니까?”


할매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무당이다. 나는 빙의가 되긴 하는데, 대부분은 백이 내 곁에서 속삭이는 식이다. 내 눈앞에 이미지가 보인다.”

 

 

 

 


“귀신은 무조건 무서워해야 합니까?”


할매는 단호하게 말했다.

 

2.png


“무서워할 필요 없다. 백 명의 백이 있고, 그 백 명이 죽은 백 군데에 깃든 혼이 있다고 치자. 그중 사람을 해치려는 건 두세 개뿐이다. 그것들도 진짜 해치려는 게 아니라, 자기 존재를 몰라주니 헤코지하는 것뿐이다. 혼백이 보이는 사람들은 기가 센 거다. 무서워하지 마라. 다 살아생전엔 사람이었다.”


나는 TV에서 보던 퇴마 이야기를 꺼냈다.

 

 

 


“TV 보면 퇴마하고 쫓아내고 그러지 않습니까?”


할매는 혀를 찼다.


“그거 잘못된 거다. 쫓아내려고 하면 더 발악하는 게 혼이고 백이다. 달래줘야 한다.”

 

 

 


“할매는 귀신을 보니까 대화도 많이 합니까?”


“내가 신당 차리고 아침저녁으로 술 올리는 건, 오다가다 갈 곳 못 찾는 혼백들을 위로하려는 거다. 그러면 그들도 편하고, 나도 씌어서 아플 일이 없다.”

 

 

 

 


“일반인도 귀신에게 덕을 풀 수 있습니까?”


“큰 길가 사거리, 어두운 골목길, 공사터. 그런 곳엔 꼭 있다. 거기 술 한 잔 정성스럽게 뿌리는 것도 기도의 일종이다. 차 고사 지내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다가 내가 장난처럼 물었다.

 

 

 


“귀신이랑 친해질 수도 있습니까?”


할매 표정이 갑자기 굳었다.


“절대 친해지지 마라. 큰일 난다. 네 대가 아니라 후손 대에 큰일 치른다.”


그 말은 괜히 섬뜩했다.

 

 

 


나는 자살한 사람이나 사고사한 사람에 대해서도 물었다.


“자살한 사람, 사고사한 사람들은 전부 원귀가 됩니까?”


“원귀가 아니다. 그 혼백들은 억울해서 하소연하는 거다. 나쁜 귀신은 조상귀 말고는 거의 없다고 봐라.”


“그런데 TV나 영화에서는 귀신이 흉측한 모습으로 나오지 않습니까?”


할매는 조용히 말했다.


“그래서 곱게 죽어야 한다는 거다. 혼백은 죽은 그때의 모습을 기억한다. 네가 깨져 죽었다면, 네 혼은 깨진 모습을 기억한다. 그 흉측한 자기 모습을 보고, 없는 고통까지 만들어내고, 사람들에게 울부짖는다. 그래서 자살하지 말라는 거다.”

 

 

 


“귀신들은 자기들이 죽은 걸 압니까?”


“모른다. 열에 여덟은 자기가 죽은지도 모른다. 알면 우주로 가든지 한다.”


“우주요? 할매 입에서 우주라는 말이 나오니 신기합니다.”


“사람 몸 자체가 우주다. 책을 봐라.”


그 말도 이상하게 인상 깊었다.


내가 말했다.


“할매님 공부 많이 하신 것 같습니다.”

 

 

 


“마흔셋에 신병을 크게 앓고 절에 들어갔다. 그때부터 13년을 책을 봤다. 그렇다고 내가 다 맞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내 눈에 보이고, 내가 겪은 걸 말하는 거다.”

 


 


나는 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자기 죽은 줄 모르는 귀신은 뭘 합니까?”


“죽은 모습 그대로 혼과 백이 떠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귀신, 원귀, 영화에 나오는 흉측한 것들. 그게 그런 거다.”


나는 순간 큰 사고가 난 장소들이 떠올랐다.

 

 


“대구 지하철 참사나 삼풍백화점 같은 곳에도 그 자리에 혼백이 많습니까?”


그 말이 끝나자마자 할매가 정색했다.


“함부로 입 밖에 내지 마라. 그 혼백들 전국을 떠돈다.”


나는 숨을 삼켰다.

 

 

 


“위령제 같은 건 소용없습니까?”


“아무 소용없다는 건 아니지만, 각자 사연이 얼마나 구구절절하겠나. 낮에도 혼백은 사람들 행동과 말을 다 본다. 술 취한 놈이 길 가다가 그런 사고로 죽은 사람들을 욕해봐라. 십중팔구 혼백이 헤코지한다. 술 먹고 가다가 차도로 밀리든, 지갑을 잃어버리든, 이상한 일이 생긴다.”


“착하게 살아야겠네요.”


“착하게 살면 길신들이 돕는다. 길가의 혼백들도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은 돕는다. 그런 재수도 생긴다.”


나는 괜히 등 뒤가 신경 쓰였다.

 

 

 


“겁납니다. 제 주변에도 있다는 게.”


할매가 나를 보더니 말했다.


“지금 네 뒤에도 있다.”


순간 온몸이 굳었다.

 

 

 


“그게 누굽니까? 나쁜 겁니까?”


“걱정 마라. 어떤 할매인데, 훗날 네가 사고 날 때 돌봐줄 할매다.”


그 말은 당시엔 그냥 무섭게만 들렸다.

그런데 실제로 3년 뒤 고속도로에서 큰 사고를 당했다. 뒤에서 4중 추돌이 났고, 나는 당시 마티즈를 타고 있었다. 차는 80% 가까이 파손됐다. 정말 이상하게도 내 몸이 엎드린 모양 그대로 차가 찌그러져서, 나는 타박상 정도만 입었다. 나를 들이받은 트럭 기사는 튕겨 나가 중상을 입었고, 뒤쪽 차량에 타고 있던 사람은 사망했다.

 

 


그때 할매가 했던 말이 떠올라 한동안 소름이 가시지 않았다.


나는 괜히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농담을 했다.

 

 

 


“그 할매가 돈 많이 벌게 해주진 않습니까?”


그러자 할매가 딱 잘라 말했다.

 


“무엄하다. 입조심해라.”

 


그래서 바로 입을 다물었다.


이후 종교 이야기도 했다.

 

 

 


“기독교, 천주교, 불교에서도 귀신을 믿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느님과 부처님의 차이는 뭡니까?”


할매는 말했다.


“사람들이 착각하는데, 원래 불교에는 귀신이 없다. 그건 내가 정확히 안다.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다. 민간신앙과 인도의 신앙이 섞이면서 귀신 이야기가 붙은 거다. 석가여래니 미륵불이니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고타마 싯다르타께서는 깨달음을 얻고 현자가 되신 거다.”


“고타마 싯다르타가 누구입니까?”


“네가 잘 아는 부처님이다. 부처라는 것은 형상이 없다. 신선처럼 날아다니는 게 아니다. 깨달으면 그만큼 가벼워진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거다.”


“그럼 할매도 산에서 깨달음을 구하지, 왜 내려오셨습니까?”


할매는 웃지도 않고 말했다.

 

 


“나는 내가 잘 안다. 나는 무식해서 연을 끊지 못한다.”


그 말이 묘하게 슬펐다.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럼 기독교와 천주교는요?”


“기독교와 천주교에서 말하는 하느님은 귀신의 대장이다. 엄청 기가 세다. 잡귀가 아니라 신이다. 그래서 교회나 성당에 다니면 조상귀도 다 빠져나간다.”


“정말 하느님이 존재합니까?”


그 질문에 할매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이렇게 말했다.

 

 


“존재 유무가 문제가 아니다. 세상 만인이 떠받들고 있다고 믿으면, 그 믿음 자체가 신을 존재하게 한다.”


나는 그 말이 굉장히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뭔가 깊은 말 같습니다.”


“종교는 자기가 믿어서 자기에게 맞는 게 제일이다.”


그 말은 지금도 기억난다.

믿음이 먼저인지, 존재가 먼저인지 따지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믿고 의지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그 사람 안에서 힘을 가진다는 뜻처럼 들렸다.


시간이 어느새 한 시간이 넘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내 미래를 물었다.

 

 

 


“할매가 봤을 때 제 미래는 어떻습니까?”


할매는 나를 한참 보더니 말했다.


“서른한 살부터 풀린다. 사업하지 마라. 망한다. 네가 생각하는 그게 전부가 아니다. 나는 이 말 말고는 할 게 없다.”


“잘 산다는 말입니까?”


“욕심내지 마라. 집 한 채 못 가질 사람, 굶어 죽을 사람도 많이 봤다. 너는 쉰부터 이름을 떨친다. 삼십 년 동안 공부 많이 해라. 필시 크게 이름을 떨친다.”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마지막으로 나는 말했다.


“오늘 귀신이란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고맙습니다.”


할매는 조용히 말했다.


“어디 가서 내가 한 말은 해도 된다. 대신 이것만 꼭 말해라. 겁내지 마라. 귀신도 자연의 한 부분이다. 너도 나도 죽으면 혼백이고 우주다. 하지만 자살은 하지 마라. 자살하면 엄청 고달파진다. 지옥에 떨어진다는 말이 아니다. 자살한 귀들은 우주로 가지도 못하고 애달프다. 제발 자살은 하지 마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과학자들이나 귀신을 안 믿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하신다면요?”


할매는 웃으며 말했다.

 


“믿기 싫은데 어쩌겠나. 나도 혼백을 보지만, 죽고 나야 알겠지. 있다 없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몇 번 말하나. 우주의 순리대로 살다 가면서 서로 아옹다옹 어울려 사는 거다. 돈, 욕심 때문에 사람 해치지 말고, 서로 나누며 살아라. 돈, 명예, 권력 다 부질없다. 많이 가진 사람들이 죽으면 더 원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아깝고, 깨닫지 못했거든. 넌 그러지 마라.”


마지막으로 할매는 차를 한 잔 더 따라주며 말했다.

 

 

 


“차나 한 잔 더 해라. 사람들 많이 도와라. 술 많이 먹지 마라. 너는 술이 문제다. 술 처먹고 헬렐레 다니면, 생전 술 좋아하던 혼백들이 친구하자고 헤코지한다. 농담 아니다. 진짜다. 술 먹고 바다나 산에 가지 말라는 이야기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믿거나 말거나, 재미로 들을 수도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날 할매가 했던 말 중에 유독 오래 남은 부분이 있다.


“정말 하느님이 존재합니까?”


그 질문에 할매는 이렇게 말했다.

 

 


“존재 유무가 문제가 아니다. 세상 만인이 떠받들고 있다고 믿으면, 그 믿음 자체가 신을 존재하게 한다.”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종교는 자기가 믿어서 자기에게 맞는 게 제일이다.”


그 말이 아직도 묘하게 마음에 남는다.

귀신이 있다 없다, 신이 있다 없다를 따지는 것보다 중요한 건, 사람이 무엇을 믿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느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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