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억 엔 사건(三億円事件) 일본 전후 최대 미제사건의 전말 > 사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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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1968년 12월 10일 아침, 일본 도쿄도 후추시의 도로 위에서 믿기 힘든 사건이 벌어졌다. 은행 현금수송차가 경찰관으로 위장한 남자에게 멈춰 세워졌고, 그 안에 실려 있던 약 2억 9,430만 7,500엔이 차량째 사라졌다. 일본에서는 이 사건을 三億円事件, 즉 3억 엔 사건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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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8년 12월 10일 아침, 일본 도쿄도 후추시의 도로 위에서 믿기 힘든 사건이 벌어졌다.

    은행 현금수송차가 경찰관으로 위장한 남자에게 멈춰 세워졌고, 그 안에 실려 있던 약 2억 9,430만 7,500엔이 차량째 사라졌다. 일본에서는 이 사건을 三億円事件, 즉 3억 엔 사건이라고 부른다.

    범인은 총도 쏘지 않았고, 칼도 들지 않았다. 사람을 때리지도 않았다.

    그가 사용한 것은 가짜 경찰오토바이, 경찰관 복장, 폭탄이라는 거짓말, 그리고 발연통에서 피어오른 연기였다.


    공식 사건명은 현금수송차 강탈 사건이지만, 일본에서는 보통 3억 엔 사건, 3억 엔 강탈 사건, 또는 다른 3억 엔 사건들과 구분하기 위해 후추 3억 엔 사건이라고 부른다. 사건은 끝내 해결되지 않았고, 1975년 12월 10일 공소시효가 완성되면서 일본 범죄사에 남은 대표적인 미제사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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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의 시작: 도시바 직원들의 겨울 보너스

    이날 현금수송차가 운반하던 돈은 단순한 은행 자금이 아니었다.

    당시 도쿄시바우라전기, 지금의 도시바 후추공장 직원들에게 지급될 겨울 보너스였다.


    운반 차량에는 일본신탁은행 국분지지점 직원들이 타고 있었고, 목적지는 도시바 후추공장이었다. 당시에는 대기업 직원들의 월급이나 보너스를 계좌이체가 아닌 현금으로 지급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은행에서 공장까지 거액의 현금을 직접 옮기는 일이 지금보다 훨씬 흔했다.


    그 현금은 약 2억 9,430만 엔.

    일본 보도에서는 현재 가치로 약 30억 엔 상당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사건 전조: 은행 지점장 앞으로 온 협박장

    사건은 갑자기 터진 것처럼 보이지만, 며칠 전부터 이상한 일이 있었다.


    1968년 12월 6일, 일본신탁은행 국분지지점장 앞으로 협박장이 도착했다. 내용은 대략 이랬다.


    지정한 장소로 돈을 가져오지 않으면 지점장 집을 폭파하겠다.


    경찰은 실제로 여경을 은행원으로 위장시켜 돈 전달 장소 주변에 배치했고, 약 50명의 경찰관이 잠복했다. 하지만 협박범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 협박장은 나중에 사건 당일 범인이 은행원들을 속이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된다.

    왜냐하면 범인은 현금수송차를 세운 뒤 “지점장 집이 폭파됐다. 이 차에도 폭탄이 설치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식으로 말했기 때문이다.


    은행원 입장에서는 며칠 전 실제 협박장이 있었기 때문에 그 말을 완전히 무시하기 어려웠다.


     

     

     

    범행 현장: 후추형무소 북쪽 도로

    사건이 벌어진 곳은 도쿄도 후추시, 후추형무소 북쪽 도로였다.

    일본 현지 답사 자료에서는 이 도로가 흔히 학원거리, 学園通り로 언급된다. 


    1968년 12월 10일 오전 9시 21분 무렵, 현금수송차 앞에 경차오토바이를 탄 경찰관처럼 보이는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차량을 멈춰 세웠다.


    은행원들은 그가 진짜 경찰관이라고 생각했다.

    흰색 오토바이, 경찰관처럼 보이는 복장, 긴박한 말투.

    그 모든 것이 너무 자연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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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은행원들에게 차량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을 수 있다고 말했고, 차 밑을 확인하는 척했다. 그러더니 발연통을 사용해 연기를 피웠다. 은행원들은 그것을 폭탄에서 나는 연기라고 생각하고 차량에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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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순간 범인은 현금수송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그대로 차를 몰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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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행 시간은 오전 9시 21분부터 9시 24분 무렵까지, 약 3분으로 정리된다. 


     

     

     

    범인의 수법이 무서웠던 이유

    3억 엔 사건이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이유는 단순히 돈이 많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범행 방식 자체가 너무 대담하고, 동시에 너무 계산적이었다.


    범인은 은행원들을 직접 공격하지 않았다.

    대신 “경찰”이라는 사회적 신뢰를 이용했다.


    당시 일본 사회에서 경찰오토바이경찰은 강한 권위를 가진 존재였다.

    도로에서 경찰오토바이를 탄 경찰이 차량을 세우면 대부분의 사람은 의심하지 않는다. 범인은 바로 그 지점을 파고들었다.


    그는 진짜 폭탄을 사용하지 않았다.

    발연통을 다이너마이트나 폭발물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즉, 실제 폭력 대신 “폭탄일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만들었다.


    이 사건은 물리적 힘보다 심리전이 더 무서운 범죄였다.

    범인은 돈을 훔치기 전에 먼저 은행원들의 판단력을 훔쳤다.


     

     

     

    범인이 남긴 가짜 경찰 오토바이

    범인은 현금수송차를 몰고 달아났고, 현장에는 그가 타고 온 가짜 경찰오토바이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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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경찰오토바이는 진짜 경찰용 오토바이가 아니었다.

    시중 오토바이를 흰색으로 칠해 경찰오토바이처럼 꾸민 것이었다. 당시 기사들은 가짜 경찰오토바이가 현장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수사가 빨리 해결될 것이라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유류품은 많았지만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네 개의 주요 현장

    일본 자료를 보면 3억 엔 사건에는 주로 네 개의 현장이 등장한다.


    첫 번째는 현금수송차가 빼앗긴 후추형무소 뒤 학원거리다. 이곳에는 가짜 경찰오토바이와 발연통 같은 유류품이 남았다.


    두 번째는 범인이 현금수송차를 버린 장소로 알려진 무사시 고쿠분지 유적 부근이다. 첫 번째 현장에서 약 1.3km 떨어진 곳으로 정리된다.


    세 번째는 사건 발생 약 4개월 뒤, 고가네이시 혼초의 단지 주차장에서 발견된 카롤라다. 이 차의 트렁크에서는 빈 현금 운반용 제럴루민 케이스 3개가 발견되었다.


    네 번째는 감시용으로 쓰였을 가능성이 있는 또 다른 카롤라가 발견된 장소다. 사건 당일 이 주변에서 엔진이 켜진 오토바이가 있었다는 목격 정보도 있었다고 보도된다. 


    이 흐름을 보면 범인은 현금수송차를 빼앗은 뒤, 미리 준비한 차량으로 갈아타며 도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류품은 많았다, 그런데 왜 못 잡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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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건의 가장 큰 미스터리는 이것이다.


    증거가 없어서 못 잡은 사건이 아니라, 증거가 너무 많았는데도 못 잡은 사건이었다.


    일본 보도에 따르면 사건 관련 유류품은 총 120점에 달했다. 가짜 경찰오토바이, 발연통, 차량, 빈 현금 케이스 등 여러 물건이 남았다. 그래서 당시 많은 형사들은 사건이 곧 해결될 것으로 봤다고 한다. 


    하지만 그 물건들은 범인을 특정하는 결정적 증거가 되지 못했다.


    지금처럼 CCTV가 촘촘하지 않았고, DNA 감정 기술도 없었다.

    차량이나 물건이 발견되어도 그것을 누가 실제로 사용했는지 입증하기 어려웠다.

    범인이 흔한 물건과 도난 차량을 사용했다면 추적은 더 어려워졌다.


    결국 유류품은 많았지만, 그 유류품이 범인의 이름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초기 수사의 문제

    이 사건에서 자주 지적되는 부분은 초동수사의 지연과 혼선이다.


    데일리신초 보도에 따르면, 경찰이 사건을 파악하고 긴급배치를 한 시각은 오전 9시 43분경이었다. 사건 발생 후 약 20분이 지난 뒤였다. 은행원들은 발연통 연기를 보고 폭발로 착각했고, 근처 주유소에서 지점에 연락했다. 이후 지점이 경찰에 확인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흘렀다. 


    물론 이후 경찰은 대대적으로 움직였다.

    경시청은 순찰차 631대와 약 9,500명의 경찰관, 기동대까지 포함해 대규모 포위망을 펼쳤다. 하지만 이미 범인은 현장을 벗어난 뒤였다. 


    NHK 관련 보도에서도 이 사건은 “초동수사의 실수”와 “중요 증언의 누락”이 후대에 다시 조명되는 사건으로 소개된다. 


     

     

     

    몽타주 사진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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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억 엔 사건 하면 일본인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 중 하나가 범인의 몽타주 사진이다.


    당시 경찰은 범인의 얼굴로 추정되는 몽타주를 공개했고, 이 사진은 일본 전역에 퍼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에는 이 몽타주가 실제 범인과 얼마나 닮았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었다.


    NHK의 2026년 관련 프로그램 소개 기사에서도 경찰이 만든 몽타주 사진이 사람들의 기억에 강하게 남았다고 설명한다. 동시에 해당 프로그램은 당시 수사 자료와 증언을 다시 검토하며, 범인을 둘러싼 증언과 초동수사 문제를 다룬다고 소개했다. 


    몽타주가 너무 유명해지면 수사에는 양면성이 생긴다.

    제보를 모으는 데 도움이 되지만, 동시에 사람들의 기억을 그 얼굴 하나로 고정시킬 위험도 있다.


     

     

    수사 규모: 일본 경찰의 자존심을 건 사건

    이 사건은 일본 경찰 전체의 자존심을 건 수사로 커졌다.


    NHK 관련 보도에 따르면, 동원된 수사원은 연인원 약 17만 명, 수사 대상자는 약 12만 명이었다. 


    이 정도 규모의 수사에도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돈도 대부분 회수되지 않았다.

    그리고 1975년 12월 10일, 사건 발생 7년 만에 공소시효가 완성되었다.


    이때부터 3억 엔 사건은 단순한 강탈 사건이 아니라, “일본 전후 최대 미제사건”이라는 상징이 되었다.


     

     

    용의자설 1: 경찰관의 아들, 이른바 ‘소년 S’

    3억 엔 사건에서 가장 유명한 가설 중 하나는 이른바 소년 S 설이다.


    이 설에서 언급되는 인물은 당시 19세 전후의 청년으로, 아버지가 오토바이경찰관이었다는 점 때문에 주목받았다. 오토바이나 차량에 익숙했을 가능성, 경찰 장비와 분위기를 알고 있었을 가능성 때문에 여러 추리에서 중심 인물로 다뤄졌다.


    문춘온라인은 2025년 공소시효 완성 50년 관련 기사에서, 이 사건이 범인이 잡히지 않은 채 미제로 남았고, 이후 여러 작가와 기자들이 범인상에 접근하려 했다고 소개한다. 


    다만 이 부분은 반드시 조심해야 한다.

    소년 S가 범인이라는 확정 판결은 없다.

    사건은 미제로 끝났고, 특정인을 범인으로 단정할 수 없다.


     

     

    “가장 유명한 용의자설 중 하나로 경찰관의 아들이었던 청년이 언급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후대에 반복된 가설일 뿐, 공식적으로 범인으로 확정된 적은 없다.”

     

     

     

    신주쿠의 게이 S의 알리바이 증언

    S는 사건 발생 2~3일 전부터 사건 전날까지, 자신의 집인 신주쿠의 맨션에서 K와 함께 밤을 보냈고, 날이 밝은 아침 8시쯤 K가 집을 나가는 것을 배웅했다고 증언했다.


    다만 “아침 8시”라는 시간은 시계를 보고 확인한 것이 아니라, 겨울철 바깥이 밝아진 정도를 보고 판단한 것이었다. 또 당시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도, 우산이나 레인코트를 빌려준 기억이 없다는 등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


    또한 K의 증언에 따르면 S를 처음 만난 것은 사건 발생 20일 전이라고 되어 있지만, 여름에 함께 여행을 갔을 때 찍은 S의 사진을 장식해두고 있었다는 점 등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자료에 따라서는 S가 게이바 경영자였으며, 11월 초 신주쿠의 24시간 영업 찻집 ‘시로’에서 S와 만나게 되었고, 그 이후 몇 차례 S의 집에 머물게 해주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공소시효 직전, S 범행설 재부상

    공소시효까지 불과 5개월밖에 남지 않은 1975년 7월, S 주변 인물들을 재수사하라는 특별 명령이 내려졌다. 이미 히라쓰카는 은퇴한 뒤였다.


    마침 그 무렵은 드라마 「악마 같은 녀석」이 방영되고 있던 시기였다.


    다치카와 그룹에서 S와 친하게 지내던 Z, 사건 당시 18세의 돈 씀씀이가 갑자기 좋아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Z의 집안은 가난했다. 아버지는 입원 중이었다. 무직이었던 Z는 스낵바를 운영하던 어머니에게 돈을 요구하곤 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건 다음 해인 1969년이 되자 Z는 찻집을 개업했고, 부동산 회사까지 설립했다. 1970년에는 롯폰기에 사무실을 두고 주식 작전에도 참여했으며, 당시 월세가 10만 엔 이상이던 요요기의 가구 딸린 맨션에 거주했다. 또한 머스탱, 콜벳 같은 고급 외제차를 몰고 다녔고, 하와이에 고급 별장까지 소유하고 있었다.


    공소시효까지 25일밖에 남지 않은 11월 15일, 수사본부는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Z를 별건인 공갈 혐의로 체포한 것이다.


    돈의 출처를 추궁하자 Z는 자해 행위를 반복했고, 결국 조사는 중단되었다. 


     

     

     

    용의자설 2: 내부 정보 유출설

    두 번째로 많이 언급되는 것은 내부 정보 유출설이다.


    범인은 수송 날짜, 시간, 경로, 금액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움직였다.

    도시바 직원들의 보너스 지급일에 맞춰 현금수송차를 노렸고, 차량이 지나갈 장소도 정확히 선택했다.


    이 때문에 은행 내부, 공장 관계자, 운송 경로를 알고 있던 주변 인물 중 누군가가 정보를 흘렸을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하지만 이것도 확정은 아니다.

    범인이 사전 답사와 관찰만으로 정보를 얻었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범행이 너무 정확했기 때문에 내부 정보 유출설은 지금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용의자설 3: 단독범인가, 공범인가

    공식적으로 현장에서 직접 움직인 범인은 한 명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건 전체를 보면 단독범인지 공범이 있었는지는 끝내 확정되지 않았다.


    단독범설은 범인이 치밀하게 준비했고, 차량을 미리 배치해 혼자서도 실행할 수 있었다고 본다.


    반면 공범설은 현금수송차 탈취, 차량 교체, 현금 케이스 이동, 감시용 차량 가능성 등을 보면 조력자가 있었을 수 있다고 본다.


    현재까지 안전한 정리는 이렇다.


    실행범은 한 명으로 보이지만, 공범이나 조력자의 존재는 확인되지 않았다.


     

     

     

    돈은 어디로 갔나

    3억 엔 사건에서 또 하나 이상한 점은 돈의 행방이다.


    거액의 현금이 사라졌는데, 이후 그 돈이 명확하게 시중에서 발견되었다는 결정적 기록은 없다. 일부 지폐 번호가 확인되어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범인을 추적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여러 추정이 나왔다.


    범인이 오랫동안 돈을 숨겼다.

    공범들이 조금씩 나누어 썼다.

    현금 일부가 폐기되었거나 다른 방식으로 세탁되었다.

    또는 범인이 돈을 제대로 쓰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결론은 없다.

    돈도, 범인도, 사건의 최종 진실도 사라졌다.


     

     

     

     

    왜 ‘피해자가 없는 범죄’처럼 소비되었나

    3억 엔 사건은 이상하게도 일본 대중문화에서 “멋진 범죄”, “천재 범죄”, “피해자가 없는 범죄”처럼 다뤄지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돈은 보험 처리되었고, 직원 보너스 지급 자체는 진행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건을 겪은 은행원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경찰 수사에 관련된 사람들도 엄청난 압박을 받았다. 사건 이후 수사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용의선상에 올랐고, 의심과 소문에 시달린 사람들도 있었다.


    NHK 프로그램 소개 기사 역시 당시 현장에 있었던 수사원, 기자, 목격자들의 증언을 통해 반세기 넘게 묻혀 있던 현장의 고통과 수사의 그림자를 다룬다고 설명한다. 


    즉, 3억 엔 사건은 단순히 “영화 같은 완전범죄”로만 소비할 사건이 아니다.

    한 시대의 허점과 수사 실패,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상처 입은 사람들을 함께 봐야 하는 사건이다.

     

     

     

    3억엔 사건 후일담

     

    府中三億円事件を計画・実行したのは私です。는 직역하면 **“후추 3억 엔 사건을 계획하고 실행한 것은 저입니다.”**라는 뜻입니다.

    이 문구는 실제 범인의 공식 고백으로 확인된 것이 아니라, 2018년 일본 소설 투고 사이트 **「小説家になろう」**에 올라와 화제가 된 자칭 범인 시점의 고백문·소설 제목입니다. 이후 포플러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고, 소년점프+에서 만화화되었습니다.

     

     

     

    내용 요약

    작품 속 화자는 노인이 된 “나”입니다. 그는 오랫동안 숨겨온 비밀을 고백하겠다고 말하며, 일본 전후 최대 미제사건 중 하나인 3억 엔 사건의 진상을 자신이 알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가 밝히는 설정은 이렇습니다. 젊은 시절의 화자 “白田”은 학생운동 분위기 속에서 살던 청년이었고, 친구인 소년 S와 가까운 관계였습니다. 작품에서는 이 S가 “省吾”라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白田은 학생운동의 좌절, 청춘의 방황, 사랑과 질투, 돈에 대한 욕망이 뒤섞이는 과정에서 현금수송차 강탈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위키 설명에 따르면, 작품 안에서는 白田이 소년 S 및 여성 인물 京子와 얽히며 사건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구조로 전개됩니다. 


    작품은 단순한 범죄 고백문이라기보다, “완전범죄의 진상”을 빌린 청춘 회고담처럼 쓰였습니다. 실제 사건의 유명한 요소들, 예를 들어 가짜 경찰관, 현금수송차, 발연통, 폭발물 위장, 도주, 미제화된 수사 등이 이야기의 뼈대가 됩니다.


    실제 3억 엔 사건과 연결되는 부분

    실제 3억 엔 사건은 1968년 12월 10일 도쿄도 후추시에서 발생했습니다. 범인은 백바이 경찰관으로 위장해 “차에 다이너마이트가 설치됐다는 신고가 있었다”는 식으로 현금수송차를 세운 뒤, 차량 아래를 조사하는 척하며 발연통을 피웠고, “폭발한다”고 외쳐 은행원들을 차에서 내리게 한 뒤 현금수송차를 몰고 달아났습니다. 피해금은 도시바 후추공장 직원들의 보너스였고, 사상자는 없었습니다. 


    이 사건은 거액이 사라졌지만 피를 흘리지 않았고, 범인이 잡히지 않은 채 공소시효를 넘겼기 때문에 일본 대중문화에서 계속 미스터리로 소비되었습니다. 그래서 영화, 드라마, 소설, 다큐, 유튜브 소재로 반복적으로 다뤄졌습니다. 


    왜 화제가 됐나

    2018년은 사건 발생 50주년에 가까운 시기였습니다. 그때 「小説家になろう」에 “내가 범인”이라는 식의 글이 올라오자 일본 인터넷에서 크게 퍼졌습니다. ねとらぼ 보도에 따르면, 이 글은 “읽게 만드는 문장”이라는 반응과 함께, “진짜라면 대사건이고, 창작이라면 대단하다”는 식의 반응을 얻었습니다. 


    특히 화제가 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글의 형식이 너무 노골적인 “범인 고백”이었습니다. 단순한 추리소설 제목이 아니라, 마치 노인이 죽기 전 진실을 밝히는 유언처럼 구성되었습니다.


    둘째, 실제 사건에서 알려진 유력 용의자 “소년 S”와 비슷한 인물을 작품 안에 넣었습니다. 현실의 3억 엔 사건에서도 소년 S는 오랫동안 여러 추측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독자들은 작품이 실제 자료를 바탕으로 한 것인지 궁금해했습니다.


    셋째, 작품 안에는 “경찰수첩” 같은 미공개 단서처럼 보이는 장치가 등장했습니다. 일부 독자들은 이것을 “진범만 알 수 있는 비밀 폭로가 아니냐”고 봤습니다. 


    하지만 진짜 고백으로 보기는 어렵다

    현재 공개 자료 기준으로 이 작품이 실제 범인의 고백이라는 증거는 없습니다. 오히려 여러 전문가와 기자들은 신빙성이 낮다고 봤습니다.


    NEWSポストセブン 보도에서 사건 관련 저술을 가진 저널리스트는 “진짜라면 더 구체적인 디테일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작품 속 S와 현실의 S 설정이 맞지 않는 부분, 여성 인물 설정의 불일치 등이 지적되었습니다. 


    가장 큰 반박 포인트는 “경찰수첩”입니다. 작품에서는 S의 아버지가 백바이 경찰관이었고, 그의 경찰수첩이 사건에 사용됐다는 식의 설정이 나오지만, 전문가 설명에 따르면 당시 경찰관이 경찰수첩을 집에 가져가 개인 보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고, 분실되면 바로 큰 문제가 됐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디어는 재미있지만 미스터리 소설로서도 조금 허술하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결론

    3억 엔 사건은 일본 범죄사에서 가장 유명한 미제사건 중 하나다.


    확정된 사실은 이렇다.

    1968년 12월 10일, 도쿄 후추시에서 현금수송차가 가짜 경찰오토바이 경찰에게 멈춰 세워졌다. 범인은 차량에 폭탄이 설치됐다고 속였고, 발연통을 이용해 은행원들을 대피시켰다. 그 틈에 현금수송차를 몰고 달아났다. 피해액은 약 2억 9,430만 엔이었다. 경찰은 대규모 수사를 벌였지만 범인을 체포하지 못했고, 1975년 공소시효가 완성되었다.


    아직도 남은 의문은 이것이다.


    범인은 누구였나.

    정말 혼자였나.

    돈은 어디로 갔나.

    왜 120점의 유류품이 있었는데도 잡히지 않았나.

    그리고 그 유명한 몽타주 사진은 정말 범인과 닮았던 것일까.


    반세기가 넘게 지났지만, 3억 엔 사건은 여전히 일본 미제사건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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