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풍백화점 붕괴 현장에서 벌어진 인간의 탐욕, 악마녀와 도둑 사건의 전말
삼풍백화점 ‘악마녀’와 현장 도둑 사건 — 참사 속에서 벌어진 또 다른 범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1995년 6월 29일 오후 서울 서초동 삼풍백화점에서 발생한 대형 붕괴 참사였다. 국가기록원 기록 기준으로 사망 502명, 부상 937명, 실종 6명이 발생했고, 건물·시설·상품 등 막대한 재산 피해도 뒤따랐다. 사고 원인은 단순한 “갑작스러운 붕괴”가 아니라, 설계 변경, 부실 시공, 무리한 증축, 용도 변경, 하중 증가, 관리 부실이 겹친 구조적 참사였다.
그런데 이 참사는 구조 실패와 책임자 처벌 문제만 남긴 것이 아니었다. 무너진 백화점 안팎에서 생존자를 찾고 시신을 수습하던 바로 그 현장에서, 일부 사람들이 옷·명품·골프채·금품·유품 등을 훔치는 절도 사건이 잇따랐다. 훗날 인터넷에서 ‘삼풍백화점 악마녀’, ‘악마 아줌마’, ‘악마의 미소’라고 불린 인물도 바로 이 현장 절도 논란과 함께 회자된 사람이다.
[ai 참고 자료]
다만 먼저 구분해야 한다. ‘악마녀’는 수사기관의 공식 사건명이나 실명 공개 사건명이 아니라, 당시 사진·방송 화면을 본 대중이 붙인 비난성 별칭이다. 확인 가능한 핵심은 “한 여성의 모습만 있었던 단일 사건”이 아니라, 붕괴 직후 혼란을 틈타 현장 절도가 다수 벌어졌고, 그중 일부 장면이 언론과 방송을 통해 강한 충격을 줬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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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붕괴 직후 현장은 구조보다 먼저 ‘아수라장’이 되었다
삼풍백화점은 무너진 직후 콘크리트 더미와 철근, 매장 물품, 유리 파편, 먼지, 화재와 매몰 공간이 뒤섞인 상태였다. 내부에는 손님과 직원들이 매몰되어 있었고, 구조대·소방·경찰·군·자원봉사자·취재진·실종자 가족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문제는 초기에 현장 통제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구조 지휘 체계가 명확하지 않았고, 누가 구조대원인지, 누가 자원봉사자인지, 누가 실종자 가족인지, 누가 단순 구경꾼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MBC의 1995년 보도도 “무질서한 현장에서 절도범들이 판을 쳐 시신의 유품들이 없어지고 구조대원들이 폭행당하는데도 경찰의 관심은 다른 데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은 절도범들에게 틈을 줬다. 사고 직후 백화점 내부와 잔해 주변에는 아직 회수되지 않은 의류, 가방, 귀금속, 고가품, 매장 상품, 개인 소지품이 흩어져 있었다. 구조를 돕겠다며 들어온 사람들 중 일부가 실제로는 물건을 챙겨 나갔고, 순수하게 구조를 도우러 온 자원봉사자들까지 의심받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2. ‘악마녀’로 불린 장면은 무엇이었나
인터넷에서 오래 떠돈 ‘악마녀’ 또는 ‘악마의 미소’ 사진·영상은, 붕괴 현장 또는 수습 현장 주변에서 한 여성이 옷가지 등을 챙기는 듯한 모습으로 알려졌다. 후대 방송과 기사들은 이 장면을 “방치된 옷 무덤 속에서 여성이 옷가지를 챙기며 미소를 짓는 모습”으로 설명했다.
이 장면이 사람들에게 특히 큰 분노를 일으킨 이유는 단순히 물건을 훔쳤다는 점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 장소가 보통의 상점이나 빈 매장이 아니라, 수백 명이 사망하거나 매몰된 참사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구조대는 생존자를 찾고 있었고, 가족들은 실종자를 기다리고 있었고, 잔해 속에는 시신과 유품이 뒤섞여 있었다. 그런 공간에서 옷이나 물건을 챙기는 모습은 대중에게 “참사 앞에서도 죄책감이 없어 보이는 행동”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 인물의 정확한 신원, 실제 처벌 결과, 사진·영상의 모든 전후 맥락은 공개 자료만으로는 명확히 확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글을 쓸 때는 “악마녀가 누구였고 지금 어떻게 살고 있다”는 식의 단정은 피하는 것이 좋다. 확인 가능한 표현은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 절도 장면으로 알려진 인물”, “대중에게 ‘악마의 미소’로 불린 장면” 정도가 안전하다.
3. 절도범은 한두 명이 아니었다
더 충격적인 점은 ‘악마녀’로 불린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관련 보도에 따르면 당시 서초경찰서 담당 형사는 삼풍백화점 참사 현장에서 절도로 입건된 사람이 약 400명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매일 저녁에 몇십 명씩 들어왔다”고 말했고, 기억나는 사례로 “17만 원짜리 바지를 10개 입고 있던 사람”을 언급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참사 현장 절도는 단순한 일탈 몇 건이 아니라 상당한 규모로 반복된 사건이었다. 당시 백화점에는 고급 의류, 잡화, 골프용품, 귀금속, 가방, 식품, 생활용품 등이 있었고, 붕괴 뒤 매장과 창고의 경계가 무너졌다. 절도범들은 그 혼란을 틈타 “주웠다”, “버려진 물건인 줄 알았다”, “자원봉사하러 들어왔다”는 식으로 접근했을 가능성이 크다.
MBC 1995년 보도에서도 “자원봉사자를 가장한 도둑들이 들끓었다”고 전했다. 당시 서울시 안전관리처장은 “골프채고 뭐고 이튿날 들어가니까 싹 없었다”는 취지로 말했고, 절도 사건 뒤 통제가 강화되면서 오히려 순수한 자원봉사자들이 현장을 떠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보도됐다.
즉, 절도범들은 피해자 유품뿐 아니라 백화점 상품, 매장 물건, 고가 소비재까지 노렸다. 이 때문에 현장에서는 “구조 활동”과 “범죄 차단”이 동시에 필요했지만, 초기 지휘 체계가 흔들리면서 둘 다 제대로 관리되지 못했다.
4. 왜 이런 일이 가능했나
삼풍백화점 현장 절도 사건이 벌어진 배경에는 몇 가지 구조적 문제가 있었다.
첫째, 현장 통제선이 늦게 안정되었다. 사고 직후에는 생존자 구조가 최우선이었고, 수많은 인력이 동시에 투입됐다. 하지만 출입자 신원 확인, 구조 인력 식별, 잔해 주변 통제, 유품 보존 같은 절차가 충분히 정리되지 않았다. 참사 현장에는 구조대, 경찰, 군, 공무원, 민간 자원봉사자, 취재진, 가족, 구경꾼이 뒤섞였고, 이 틈을 타 절도범이 섞여 들어갔다.
둘째, 백화점이라는 공간 특성상 훔칠 물건이 많았다. 일반 건물 붕괴와 달리 삼풍백화점은 고가 상품이 쌓여 있던 대형 상업시설이었다. 의류 매장, 잡화 매장, 식품관, 명품류, 스포츠용품, 귀금속류 등이 있었고, 붕괴로 진열대와 창고가 무너지면서 물건들이 잔해 속에 흩어졌다. 절도범에게는 참사 현장이 아니라 “무방비 상태의 물건 더미”처럼 보였을 수 있다.
셋째, 유품과 상품의 경계가 흐려졌다. 참사 현장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단순 상품 절도보다 피해자 소지품과 유품이 사라지는 일이었다. MBC는 “시신의 유품들이 없어졌다”고 보도했다.
이 말은 단순한 재산 피해를 넘어, 희생자 신원 확인과 유가족의 마지막 기억까지 훼손하는 문제였다.
넷째, 절도 대응이 구조 활동과 충돌했다. 절도 사건이 알려지자 통제는 강화됐지만, 그 과정에서 실제로 구조를 돕던 자원봉사자들도 함께 의심받았다. MBC 보도에는 절도 사건 뒤의 통제가 순수한 자원봉사자들을 떠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결과적으로 일부 범죄자 때문에 구조 현장의 신뢰와 협력이 무너진 셈이다.
5. ‘악마녀’ 논란이 오래 남은 이유
삼풍백화점 붕괴는 이미 그 자체로도 한국 현대사의 대표적 인재였다. 부실공사와 불법 구조 변경, 위험 신호 묵살, 영업 강행, 행정 부패가 겹쳐 502명이 숨졌다. 국가기록원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이 사고를 부실시공과 무리한 확장, 구조 진단 없는 용도 변경 등이 겹친 대형 참사로 설명한다.
그런데 그 비극의 현장에서 도둑질이 벌어졌다는 사실은 사람들에게 또 다른 배신감으로 남았다. 건물을 부실하게 지어 사람들을 죽게 한 책임자들이 있었고, 그 뒤에는 죽은 사람과 다친 사람 곁에서 물건을 챙긴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악마녀’라는 별칭은 한 개인만을 향한 분노라기보다, 참사 앞에서도 탐욕을 멈추지 않은 일부 인간 군상에 대한 상징처럼 굳어졌다.
특히 웃는 듯한 표정으로 알려진 장면은 더 강한 인상을 남겼다. 사람들은 그 표정을 보고 “죄책감이 없다”, “참사 현장에서 웃을 수 있느냐”, “구조대와 가족들 앞에서 어떻게 물건을 챙기느냐”고 분노했다. 하지만 표정 하나만으로 심리 상태를 단정할 수는 없으므로, 글에서는 “미소를 짓는 듯한 장면으로 알려져 대중의 공분을 샀다” 정도로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다.
6. 현장 절도는 피해자 가족에게 또 다른 상처였다
참사 현장에서 유품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지갑, 반지, 시계, 가방, 옷, 신분증, 사진, 열쇠 같은 물건은 희생자의 마지막 흔적이다. 어떤 유품은 신원 확인에 필요하고, 어떤 유품은 가족에게 돌아가야 할 마지막 기억이다. 그런데 그 물건들이 사라졌다는 것은 유가족에게 또 다른 폭력이었다.
삼풍백화점 현장에서는 시신 수습과 신원 확인도 쉽지 않았다. 국가기록원 자료는 사망자 502명 중 사망 확인과 사망 인정이 나뉘어 있었고, 실종자도 있었다고 기록한다.
이런 상황에서 유품이 사라지면 가족은 “마지막 물건 하나라도 받고 싶다”는 바람조차 빼앗기게 된다.
그래서 삼풍백화점 절도 사건은 단순히 “무너진 백화점에서 물건을 훔친 사건”이 아니다. 생존자를 찾는 시간을 방해했고, 구조 현장의 신뢰를 무너뜨렸고, 희생자와 유가족의 존엄을 훼손한 사건이었다.
7. 순수한 자원봉사자들까지 피해를 봤다
당시 현장에는 정말로 목숨을 걸고 들어간 민간 자원봉사자들도 많았다.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 2차 붕괴 위험, 악취, 화재 위험, 절단된 철근 속에서 생존자를 찾고 시신을 수습한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일부 절도범이 “자원봉사자” 행세를 하며 현장에 들어가자, 전체 자원봉사자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MBC 보도에서 한 자원봉사자는 “한두 사람의 잘못이 있으면 그 잘못만 이야기해야지 자원봉사자는 그렇다는 생각은 납득할 수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 말은 당시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절도범을 막아야 했지만, 그 과정에서 진짜 구조 지원 인력까지 쫓겨나거나 의심받았다.
결국 절도범들은 물건만 훔친 것이 아니라 구조 현장의 협력 분위기까지 훔친 셈이었다. 재난 현장에서 신뢰가 무너지면 구조 속도와 효율도 떨어진다. 그래서 삼풍백화점 현장 절도 사건은 재난 대응 체계의 실패 사례로도 볼 수 있다.
8. 처벌과 수사에 대해 알려진 내용
공개적으로 널리 인용되는 내용은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당시 절도 혐의로 입건된 사람이 약 400명 정도였다는 담당 형사의 회상이고, 다른 하나는 자원봉사를 빙자해 고가 물품을 훔친 범죄자들이 있었다는 기록이다.
다만 개별 절도범들의 실명, 각자의 정확한 형량, ‘악마녀’로 불린 인물의 최종 처벌 결과는 공개적으로 검증 가능한 자료가 제한적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누구였다”, “지금 어디 산다”, “어떤 처벌을 받았다”는 식의 말이 많지만, 상당수는 출처가 불명확하다. 따라서 사건 글을 쓸 때는 확인된 범위를 넘어서 특정인을 단정하거나 근황을 꾸며 쓰지 않는 것이 좋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삼풍백화점 참사 현장에서 절도 행위가 실제로 문제 되었고, 당시 언론과 후대 방송에서 그것이 현장 통제 실패의 대표적 사례로 다뤄졌다는 점이다.
9. 이 사건이 남긴 교훈
삼풍백화점 ‘악마녀’와 현장 도둑 사건은 인간의 탐욕을 보여주는 자극적인 일화로만 소비되기 쉽다. 하지만 더 깊게 보면, 이 사건은 재난 현장에서 반드시 필요한 세 가지를 보여준다.
첫째, 초기 출입 통제가 중요하다. 구조 인력, 의료진, 경찰, 가족, 취재진, 자원봉사자를 구분하지 못하면 범죄자가 섞여 들어간다.
둘째, 유품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 참사 현장의 물건은 단순한 잔해가 아니라 피해자 신원과 유가족의 권리에 연결된다.
셋째, 자원봉사자 관리와 보호가 필요하다. 선의로 들어온 사람들을 활용하되, 신원 확인과 역할 배분 없이 방치하면 혼란이 커진다. 반대로 일부 범죄자 때문에 전체 자원봉사자를 배척하면 구조 역량이 줄어든다.
삼풍백화점 붕괴는 건물이 무너진 사건이었지만, 그 뒤 드러난 현장 절도는 사회적 윤리와 재난 대응 체계가 함께 무너진 장면이었다. ‘악마녀’라는 별칭이 지금까지 남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 사람의 표정 때문만이 아니라, 수백 명이 죽고 다친 자리에서 누군가는 살리려 뛰어들었고, 누군가는 훔치러 들어갔다는 극단적인 대비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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