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고전 괴담부터 학교 화장실 괴담, 카시마 씨, 보라색 거울, 인면견, 그리고 전쟁 중 실제로 행해졌다고 전해지는 국가 단위의 저주 의식까지. 괴담 연구자 요시다 유키가 들려준 일본 괴담의 뿌리와 변화를 블로그식으로 정리했다.
괴담은 단순한 무서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번 대담의 중심에는 괴담 연구자 요시다 유키가 있었다. 그는 최근 괴담 관련 책 두 권을 냈다고 소개했다. 하나는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온 일본의 명작 괴담을 다룬 책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학교 괴담을 다룬 책이었다.
요시다는 괴담을 단순히 “무서운 이야기”로만 보지 않았다.
괴담은 시대마다 형태를 바꾸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살아남고, 때로는 사회 분위기나 미디어의 영향을 받아 새롭게 변하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이번 이야기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세 가지였다.
첫째, 일본 옛이야기 속 가장 기괴한 괴담 중 하나로 꼽히는 이부산 이야기.
둘째,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실제로 행해졌다는 미국 저주 기도.
셋째,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학교 괴담의 생명력이었다.
일본 옛날이야기의 트라우마, 이부산 이야기
먼저 소개된 것은 이부산이라는 괴담이었다.
이 이야기는 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인 만화 일본 옛날이야기에서도 다뤄졌다고 한다. 그런데 단순한 민담이라기에는 내용이 너무 잔혹하고 음산해서, 지금도 “트라우마 회차”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이야기는 후쿠이현의 어느 산에서 시작된다.

어느 날, 수행을 위해 세 명의 스님이 이부산에 들어갔다.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산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세 사람은 오랫동안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산속에는 먹을 것이 없었다.
그런데도 스님들은 계속 산에 머물렀다. 마을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몇 달이 지난 뒤, 산 위에서 한 사람이 비틀거리며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세 명의 스님 중 한 명이었다. 몹시 굶주린 모습으로 내려온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산에서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세 스님은 산속에서 수행을 하던 중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늘에서 밥이 담긴 그릇이 내려왔다. 정확히 세 사람이 나눠 먹을 만큼의 밥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감사했다.
그들은 하늘이 자신들을 돕는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밥은 내려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이 달라졌다.
세 사람이 나눠 먹기에는 밥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두 명의 스님은 가장 어린 스님을 절벽으로 불러내 밀어 떨어뜨렸다.
이제 둘이서 밥을 나눠 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 날 내려온 밥은 정확히 두 사람분으로 줄어 있었다.
그러자 남은 두 사람 중 한 명은 다시 욕심을 냈다.
그는 또 다른 스님마저 절벽 아래로 밀어 떨어뜨렸다. 이제 혼자서 밥을 모두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다음 날부터, 밥은 더 이상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혼자 남은 스님은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산에서 내려왔고, 마을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애원했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욕심을 부리면 벌을 받는다”는 교훈담처럼 보이지만, 분위기가 굉장히 음산하다. 특히 애니메이션판에서는 직접 밀어 떨어뜨리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고, 염불을 외우는 장면과 다음 컷에서 사람이 사라진 장면만으로 공포를 표현했다고 한다.
오히려 직접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더 무서운 이야기였던 셈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일본의 저주로 죽었을까?
다음으로 나온 이야기는 훨씬 기묘했다.
바로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일본에서 미국을 상대로 저주 기도가 실제로 행해졌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요시다는 분명히 말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정말 그 저주 때문에 죽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전쟁 말기에 일본의 일부 사찰과 신사에서 미국 항복, 미국 조복, 전승 기원을 위한 기도가 실제로 행해졌다는 것이다.
당시 일본은 전황이 매우 불리했다.
미국의 공습은 심해지고 있었고, 물리적인 힘으로 전세를 뒤집기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물리적인 힘이 안 된다면, 비물리적인 힘으로라도 이겨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불교와 신도, 종파를 넘어서 기도가 이루어졌고, 특히 요시다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전 총리대신급 인물이 중심이 되어 큰 규모의 기도가 행해진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언급된 의식이 바로 대원수명왕법이었다.
요시다는 이것을 “개인 단위의 저주가 아니라 국가 단위의 저주”라고 표현했다. 상대 개인이 아니라 상대 국가를 무너뜨리기 위한, 매우 강한 성격의 주술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루스벨트 대통령은 1945년 4월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그러자 일부 사람들은 “기도가 통했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흥미로운 이유는, 괴담과 역사적 사실이 묘하게 겹쳐 있기 때문이다.
루스벨트의 죽음 자체는 역사적 사실이다. 일본에서 전승 기원이나 미국 조복 기도가 이루어진 것도 자료로 확인되는 부분이 있었다고 한다. 다만 그 둘 사이에 실제 인과관계가 있었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정말 저주가 통했다”라기보다, 전쟁 말기의 절박함이 만들어낸 괴담에 가깝다.
사람들이 더 이상 현실적인 승리를 믿지 못할 때, 마지막으로 의지한 것이 신불과 주술이었다는 점에서 섬뜩한 이야기였다.
학교 괴담은 왜 90년대에 폭발했을까?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학교 괴담으로 넘어갔다.
요시다에 따르면, 학교에서 전해지는 이상한 이야기 자체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학교 괴담”이라는 하나의 장르가 대중적으로 인식된 것은 1990년대부터였다고 한다.
화장실의 하나코 씨, 음악실의 베토벤 초상화, 밤에 움직이는 인체 모형, 계단 수가 바뀌는 학교 복도 같은 이야기들이 바로 그 시기의 대표적인 학교 괴담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학교 괴담이 단지 아이들이 무서워하려고 만든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학교는 아이들이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공간이다.
낮에는 익숙한 장소지만, 방과 후나 밤이 되면 전혀 다른 분위기를 가진다.
친구들과 함께 몰래 돌아다니고, 아무도 없는 복도를 지나고, 어두운 화장실을 바라보는 순간 그곳은 괴담이 태어나기 좋은 공간이 된다.
그래서 학교 괴담은 아이들의 놀이이자, 서로의 관계를 확인하는 의식처럼 작동했다.

화장실의 하나코 씨는 아직도 살아 있었다
일본 학교 괴담에서 가장 유명한 존재는 역시 화장실의 하나코 씨였다.
보통 학교 여자 화장실 세 번째 칸을 세 번 두드리고 “하나코 씨, 계세요?”라고 물으면 안에서 대답이 들린다는 식의 이야기다.
요시다는 하나코 씨가 일본 전국에 알려진 것은 1989년에서 1990년 무렵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전부터 “여자 화장실에 여자아이의 귀신이 나온다”는 이야기는 존재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점은 하나코 씨의 이미지가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빨간 옷을 입은 여자아이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과거 잡지 투고란에는 “분홍색 옷을 입은 여자아이 귀신이 화장실을 청소하고 있었다”는 식의 이야기도 있었다고 한다.
요시다는 이것을 두고, 흰 옷 귀신과 빨간 옷의 하나코 씨 사이에 있었던 중간 단계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괴담은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된 형태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입을 거치면서 조금씩 색이 바뀌고, 이름이 붙고, 설정이 덧붙여지며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이다.
네 명의 여자아이와 세 개의 열린 화장실 문
요시다가 어린 시절 들었다는 하나코 씨 계열의 괴담도 소개되었다.
이 이야기는 꽤 섬뜩했다.
어느 학교에 친한 여자아이 네 명이 있었다.
그들은 자주 화장실의 하나코 씨 놀이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늘 하던 방식이 지겨워지자 한 명씩 따로 화장실에 가서 하나코 씨를 불러보자고 했다.

먼저 A가 갔다.
하지만 5분이 지나도, 10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남은 아이들은 A가 화장실에 숨어 다음 아이를 놀라게 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B가 A를 놀라게 하겠다며 화장실로 갔다.
그런데 B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번에는 C가 걱정되어 화장실로 갔다.
하지만 C도 돌아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D는 이상함을 느끼고 조심스럽게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에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니, 세 개의 칸 문이 모두 활짝 열려 있었다.

그리고 그 세 개의 칸 안에는 A, B, C가 각각 목을 매고 죽어 있었다.
이 이야기가 무서운 이유는, 하나코 씨 놀이의 규칙을 어겼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붙기 때문이다.
하나코 씨는 혼자 부르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불러야 하는 존재였다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아이들끼리 함께하는 일종의 의식에 가까웠다.
혼자서 그 의식의 공간에 들어가는 순간, 무언가 잘못된 일이 벌어진다는 공포가 있었다.
카시마 씨, 들은 사람에게 찾아오는 괴담
요시다가 가장 무섭게 느꼈던 학교 괴담 중 하나는 카시마 씨였다.

카시마 씨는 일본의 대표적인 구전 괴담 중 하나다.
이야기를 들은 사람에게 찾아온다고 전해지며, 밤에 나타나 질문을 던진다.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죽거나 다리를 빼앗긴다는 식으로 전해진다.
지역마다 주문도 달랐다.
어떤 지역에서는
“카는 가면의 카, 시는 죽음의 시, 마는 악마의 마”
라고 대답해야 살 수 있다고 했다.
다른 지역에서는
“카시마 레이코”를 세 번 말해야 한다는 버전도 있었다.
요시다가 흥미롭게 본 것은, 이 괴담이 대형 미디어를 통해 한 번에 퍼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입에서 입으로 천천히, 그러나 오래 퍼졌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고 한다.
텔레비전에서 “이런 괴담이 유행하고 있습니다”라고 소개하면 오히려 만들어진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친구가 “이거 들으면 일주일 안에 찾아온대”라고 말하면 현실감이 생긴다.
카시마 씨는 바로 그런 식으로 살아남은 괴담이었다.
보라색 거울과 보라색 할머니
또 다른 학교 괴담으로는 보라색 거울 이야기가 나왔다.
일본에서는 “보라색 거울”이라는 말을 스무 살까지 기억하고 있으면 죽는다는 괴담이 있었다.
어떤 지역에서는 단순히 죽는다고만 했고, 어떤 지역에서는 거울 속에서 보라색 할머니가 도끼를 들고 나온다고 전해졌다.
요시다는 이처럼 여러 괴담이 서로 섞이는 현상도 흥미롭게 보았다.
보라색 거울, 보라색 할머니, 화장실 귀신, 거울 속 귀신 같은 소재가 지역과 세대를 거치며 합쳐지기도 한다.
그래서 같은 괴담이라도 지역마다 내용이 조금씩 달라진다.
괴담은 정해진 원본이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계속 변형되는 살아 있는 이야기였다.
인면견은 왜 조금 덜 무서웠을까?
1990년대 일본에서 크게 유행한 괴담 중 하나가 인면견이었다.
사람 얼굴을 한 개가 도로를 달리다가 차를 추월하고, 사람 말로 중얼거린다는 식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요시다는 인면견이 카시마 씨만큼 무섭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유는 전파 방식에 있었다.

인면견은 텔레비전과 잡지 같은 미디어가 적극적으로 다루면서 크게 유행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 입장에서는 “어른들이 일부러 유행시키는 이야기”라는 느낌이 조금 있었다.
반면 카시마 씨는 친구, 선배, 옆 학교 학생에게서 들려오는 식으로 퍼졌다.
그런 구전 방식이 훨씬 현실감 있고 무섭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괴담이 왜 무서운지를 잘 보여준다.
괴담은 내용만 무서워서는 부족하다.
누가, 어떤 분위기에서, 어떻게 말해주느냐가 훨씬 중요하다.
지금 학교 괴담은 약해지고 있었다
요시다는 현재 학교 괴담이 예전보다 약해지고 있다고도 말했다.
가장 큰 이유는 학교 안에서 괴담이 자연스럽게 전해질 기회가 줄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갑자기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불을 끄고, 커튼을 치고, 아이들을 겁주던 선생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기 어렵다.
아이를 울렸다거나, 수업과 관련 없는 이야기를 했다는 항의가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예전에는 학교 수련회나 캠프, 담력시험 같은 행사가 많았다.
그런 장소에서 자연스럽게 괴담이 생기고 퍼졌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기회도 줄어들었다.
그래서 학교 괴담은 예전처럼 폭발적으로 퍼지기 어렵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장실의 하나코 씨만은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하나코 씨 놀이는 아이들끼리 몰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없어도, 특별한 장소가 없어도, 학교 화장실만 있으면 된다.
그래서 하나코 씨는 지금도 살아남은 학교 괴담이 되었다.
괴담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었다
이번 대담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괴담을 단순히 무서운 이야기로 소비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이부산 이야기는 인간의 욕심과 벌을 보여주는 옛 전설이었다.
루스벨트 저주 이야기는 전쟁 말기 일본의 절박함이 만들어낸 역사적 괴담이었다.
학교 괴담은 아이들의 관계, 놀이, 공간 감각에서 태어난 이야기였다.
그리고 카시마 씨나 하나코 씨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괴담은, 미디어가 만든 공포와는 다른 생명력을 가지고 있었다.
괴담은 사라지는 것 같으면서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형태만 바뀔 뿐이다.
예전에는 교실과 화장실, 수련회 밤에 전해졌다면, 지금은 유튜브와 SNS, 댓글창을 통해 다시 살아난다.
결국 괴담은 사람이 있는 곳에 계속 남는다.
사람이 불안해하고, 궁금해하고, 믿고 싶어 하고,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한 괴담은 끝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