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괴담회 행운을 부르는 꿈|돼지꿈을 산 최후
이 일은 10년 전, 내가 피부 관리실에서 일하던 시절에 벌어진 일이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내 인생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아버지 사업이 완전히 망하면서 집안은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고, 더 이상 아무 일도 없던 평범한 대학생처럼 살 수 없었다.
나는 결국 대학을 그만두었다. 하고 싶은 공부도, 꿈도, 희망도 잠시 접어두고 당장 돈부터 벌어야 했다. 집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어야 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빨리 찾아야 했다.
그렇게 나는 피부 미용 자격증을 땄고, 곧바로 한 피부 관리실에 취업했다.
내가 일하게 된 곳은 흔한 동네 관리실이 아니었다. 소위 말하는 있는 집 사모님들 사이에서 유명한 럭셔리 샵이었다. 돈이 많다고 해서 아무나 회원이 될 수 있는 곳도 아니었다. 기존 회원의 추천이 있어야만 가입할 수 있는, 꽤 폐쇄적이고 고급스러운 곳이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고 조심스러웠다. 손님들도 부담스러웠고, 실장님과 선배들 눈치도 보였다. 하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빨리 일을 배워야 했고, 빨리 인정받아야 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에 나에게 이 일은 단순한 아르바이트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현실이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일이 손에 붙기 시작했다. 마사지 실력도 좋아졌고, 손님들에게 칭찬도 받기 시작했다.
“손맛이 좋네.”
“다음에도 지은 씨한테 받고 싶어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아주 조금씩 희망을 되찾았다. 어둡고 우울했던 성격도 조금씩 밝아졌다. 어쩌면 여기서 열심히 일하면 다시 학교에도 갈 수 있지 않을까. 빚도 갚고, 가족들도 다시 웃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희망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 여자, 보라 언니가 내 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어느 늦은 밤이었다. 그날 나는 혼자 남아 마감 업무를 하고 있었다. 마사지 도구들을 세척하고, 관리실 방을 하나씩 돌며 화장품과 수건을 정리하고 있었다. 손님이 다 빠져나간 샵은 낮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조명은 어둡고, 복도는 조용했고, 사람이 없는 방들은 이상하게 더 넓고 차갑게 느껴졌다.
그때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내가 피곤해서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하루 종일 손님을 상대하고, 늦게까지 정리하다 보니 귀가 예민해진 것 같았다. 그런데 잠시 뒤, 또다시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훨씬 더 또렷했다.
나는 놀라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복도도 조용했다. 누군가 숨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소리는 계속 들렸다.
처음에는 작게 웅얼거리는 것 같더니, 점점 말이 분명해졌다.
“재수 없어.”
“멍청한 것.”
“꺼지라고.”
“죽여버릴까.”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목소리는 허공에서 들리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끼고 있던 무전기 이어폰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대체 누가 이런 장난을 치는 걸까. 왜 하필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걸까. 너무 무서워서 방 안에 더 있을 수 없었다. 나는 급히 정리하던 것을 내려놓고 방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때 복도 끝에서 누군가가 달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쪽을 바라보았다. 어둑한 복도 끝으로 한 사람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뒷모습이 익숙했다. 긴 머리, 걸음걸이, 체형. 몇 번이고 같이 일하면서 봤던 그 모습이었다.
보라 언니였다.
보라 언니는 샵에서 평판이 좋은 선배였다. 예쁘고, 싹싹하고, 일도 잘한다고 선배들과 실장님에게 칭찬을 많이 받는 사람이었다. 손님들 앞에서도 늘 친절했고, 사람들에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나도 보라 언니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나는 알게 되었다.
보라 언니의 진짜 얼굴은 따로 있었다.
나는 용기를 내서 보라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 저한테 왜 그러세요? 제가 뭐 잘못했어요?”
보라 언니는 잠시 나를 보더니,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아니. 그냥.”
그리고 아주 차갑게 웃었다.
“그냥 네가 싫어. 싫은데 뭐 이유가 있니?”
그 말은 너무 잔인했다. 내가 뭘 잘못해서 미움을 받는 것도 아니었다. 오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싫다는 이유 하나로, 그 사람은 나를 괴롭히기 시작한 것이다.
그날부터 보라 언니의 괴롭힘은 노골적으로 시작되었다.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절대 티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챙겨주는 선배처럼 굴었다. 하지만 둘만 있거나,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면 어김없이 본색을 드러냈다.
혼자 정리를 하고 있으면 귀신같이 나타나 내 옆을 스쳐 지나가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쯧쯧, 불쌍하다.”
“어차피 빚도 못 갚을 텐데.”
“너 같은 애가 뭘 하겠다고.”
내 가정 형편까지 어떻게 알았는지, 보라 언니는 내가 가장 아파하는 부분만 골라 찔렀다. 그 말들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꽉 막혔다. 화가 났지만 대꾸할 수 없었다. 대꾸하면 더 큰 괴롭힘이 돌아올 것 같았다.
한번은 내가 깨끗하게 소독해 놓은 마사지 도구들을 보라 언니가 일부러 바닥에 쏟아버렸다. 금속 도구들이 바닥에 요란하게 떨어졌다. 나는 놀라서 굳어버렸는데, 그 순간 보라 언니가 사람들을 부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 지은 씨. 조심 좀 하지. 내가 도와줄까?”
그 말투는 정말 가증스러웠다. 방금 전까지 일부러 쏟아버린 사람이, 마치 내가 실수한 것처럼 연기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아무것도 몰랐다. 오히려 보라 언니가 나를 도와주는 줄 알았다. 내가 힘들어 보이면 보라 언니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걱정하는 척했다.
“지은아, 마음 힘들었지? 너 먼저 퇴근해.”
겉으로 보면 따뜻한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건 나를 위한 배려가 아니었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좋은 선배라는 걸 보여주기 위한 연기였다.
그런 날들이 계속되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내가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말하고 싶어도 믿어줄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 보라 언니는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었고, 나는 아직 어린 신입 직원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 아침, 출근길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휴대폰에 문자 하나가 와 있었다. 통장에 돈이 부족해서 이자가 연체됐다는 통보였다. 나는 그 문자를 보고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안 그래도 빚 때문에 하루하루가 버거운데, 이자까지 밀리고 있었다.
속이 답답했다. 오늘 하루도 어떻게 버텨야 하나 싶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직원용 탈의실 문을 열었다. 그런데 안에서는 직원들이 보라 언니를 둘러싸고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있었다.
“보라 씨, 얼마나 좋은 일이 생기려고 그래?”
“진짜 부럽다.”
“나 같으면 바로 복권 산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안으로 들어갔다. 보라 언니는 사람들 사이에서 웃고 있었다. 모두의 관심을 받으며 기분 좋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또 뭔데 저렇게 오들갑이야.’
그때 보라 언니가 갑자기 나에게 다가왔다. 사람들 앞이라 그런지, 평소와 달리 아주 친한 척 내 팔짱을 꼈다.
“지은 씨, 근데 왜 이렇게 표정이 안 좋아? 뭐 안 좋은 일 있어?”
나는 짧게 대답했다.
“아니에요.”
그러자 보라 언니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혹시 내 꿈 살래?”
나는 순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꿈이요?”
보라 언니는 자기가 어젯밤 신기한 꿈을 꿨다고 했다.
꿈속에서 보라 언니는 혼자 뿌연 안개 속을 걷고 있었다고 했다. 앞도 잘 보이지 않고, 주변은 온통 희끄무레한 안개뿐이었다. 그때 눈앞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냥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고 했다. 어딘가 범상치 않고, 설명하기 어려운 기운이 느껴지는 남자였다.
그 남자는 아무 말 없이 보라 언니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무언가를 덥석 안겨주고는 그대로 사라졌다.
묵직한 느낌에 보라 언니가 고개를 숙여 품 안을 내려다보았다.
그 품 안에는 새끼 돼지가 있었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니라 두 마리였다.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더 난리가 났다.
“쌍돼지네?”
“이건 완전 대박 꿈 아니야?”
“태몽 아니야?”
“돼지가 두 마리면 진짜 좋은 꿈이지.”
돼지꿈은 원래 재물운과 행운을 상징한다고 많이들 말한다. 그런데 돼지가 두 마리나 품에 안겼다니, 듣기만 해도 엄청난 길몽처럼 느껴졌다.
나도 잠시 흔들렸다.
그때 내 상황은 너무 막막했다. 돈은 없고, 빚은 쌓이고, 회사에서는 보라 언니 때문에 매일 괴로웠다. 그런데 눈앞에 ‘좋은 꿈’이라는 것이 나타난 것이다. 아무리 미신이라고 해도, 마음이 약해져 있을 때는 그런 말에도 기대고 싶어진다.
하지만 동시에 의심도 들었다.
‘이 언니가 왜 나한테 이런 꿈을 팔려고 하지?’
평소 보라 언니는 나를 그렇게 괴롭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좋은 꿈을 나한테 판다니 이상했다. 내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자, 보라 언니는 사람들 앞에서 웃으며 말했다.
“솔직히 고객들이 너한테 넘어와서 나 좀 미워하는 거 알아. 내 꿈 팔 테니까 마음 풀어. 응?”
그 말을 듣자 직원들이 오히려 보라 언니 편을 들기 시작했다.
“보라 씨가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는데 왜 그래?”
“나 같으면 고마워서라도 바로 사겠다.”
“좋은 꿈 준다잖아.”
순간 울컥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거기서 거절하면 괜히 나만 속 좁은 사람이 될 것 같았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보라 언니는 나를 배려하는 사람처럼 보였고, 나는 그 호의를 거절하는 이상한 사람이 될 상황이었다.
결국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살게요.”
보라 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웃었다.
“좋아. 그럼 내 말 따라 해 봐.”
그리고는 천천히 말했다.
“만 원에 돼지꿈 판다.”
나는 따라 말했다.
“만 원에 돼지꿈 산다.”
그렇게 나는 보라 언니에게 만 원을 주고 돼지꿈을 샀다.
그때는 정말 몰랐다. 그 돼지꿈이 내 인생에 어떤 일을 불러올지. 그 꿈이 정말 행운을 부르는 꿈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것을 부르는 꿈인지.
이상한 일은 꿈을 산 직후부터 시작되었다.
그날, 원래 보라 언니의 고객이었던 사람이 앞으로는 나에게 관리를 받겠다고 했다. 그것도 1년 치 계약을 하고 갔다. 나는 처음에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이거 제 앞으로 된 거 맞아요?”
실장님은 맞다고 했다. 정말 그 손님은 앞으로 나에게 관리를 받겠다고 한 것이다.
나는 얼떨떨했다.
‘진짜 아까 산 돼지꿈 때문인가?’
보라 언니가 보기 싫다고 생각했던 고객이 정말 나에게 온 것 같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바로 일어난 일이었다.
그런데 행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날 저녁, 직원들은 모두 긴장한 얼굴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건물주 김 회장님이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처럼, 그 샵이 있는 건물을 소유한 엄청난 VVIP 고객이었다. 돈도 많고, 팁도 크게 주는 사람이라 직원들 사이에서는 모두가 맡고 싶어 하는 손님이었다.
김 회장님은 마음에 드는 관리사를 그 자리에서 고르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그분이 오는 날이면 다들 은근히 기대하고 긴장했다.
그날도 김 회장님은 샵 안으로 들어오더니 직원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보통은 실장님이나 에이스인 보라 언니를 고를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실장님을 지나쳤고, 보라 언니까지 지나쳤다.
그리고 내 앞에서 멈췄다.
“오늘은 어디, 자기 솜씨 좀 볼까?”
나는 순간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이게 말이 돼?’
보라 언니를 지나쳐 나를 선택한 것이다. 방금 돼지꿈을 산 그날, 내가 상상도 못 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김 회장님의 관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긴장해서 손이 굳을 뻔했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마사지했다. 그런데 관리 도중 김 회장님이 갑자기 내게 물었다.
“자기는 전에 무슨 일 하다 왔나?”
나는 어쩌다 보니 내 사정을 조금씩 말하게 되었다. 원래는 대학에 다녔는데, 아버지 사업이 망하면서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다고. 빚 때문에 일을 하게 되었다고. 피부 미용 자격증을 따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마지막으로 목과 어깨를 마사지해 드릴 때였다.
김 회장님이 다시 물었다.
“자기 빚이 얼마나 된다고?”
나는 당황했다.
“아, 그게…”
“얼마야? 말해 봐.”
계속 사양하고 얼버무리려 했지만, 회장님은 집요하게 물었다. 결국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3천만 원 정도요.”
그러자 김 회장님은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래. 그럼 자기 계좌 하나만 대 봐.”
나는 깜짝 놀라 괜찮다고 했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정말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회장님은 계속 계좌번호를 물어봤다. 결국 나는 마지못해 계좌번호를 알려드렸다.
물론 진짜 돈을 보내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마음이 좋으셔서 한 말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이었다.
시끄러운 문자 소리에 잠에서 깼다. 처음에는 또 이자 독촉 문자인 줄 알았다. 그런데 문자를 확인한 순간,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숫자가 이상했다.
처음에는 잘못 본 줄 알았다.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천만.
정말 3천만 원이 입금되어 있었다.
어제 그 건물주 김 회장님이 내 계좌로 3천만 원을 이체한 것이다.
곧이어 회장님에게 문자도 왔다. 젊어서 고생하는 것도 좋지만, 공부는 다 때가 있는 법이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이런 일이 정말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걸까. 나는 눈물을 참으며 회장님께 감사 인사를 전했고, 곧장 은행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대출금을 한 방에 갚았다.
은행을 나서는 순간,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짜릿함이 밀려왔다. 내 어깨를 짓누르던 커다란 돌덩이가 한순간에 사라진 것 같았다. 숨이 쉬어졌다. 하늘이 달라 보였고, 길거리의 소리까지 다르게 들렸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올해 내가 제일 잘한 일이 그 돼지꿈을 산 거다.’
앞으로 뭘 해야 할까. 복학부터 해야 할까. 엄마한테 먼저 알려드려야겠다.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때였다.
과속하던 차량 한 대가 그대로 내 몸을 덮쳤다.
인생 최고의 행운이 찾아왔다고 믿었던 바로 그날, 나는 죽었다.
정말 허무할 정도로 한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 장례식장에서야 죽음의 진실을 듣게 되었다.
내 영정 사진 앞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가족들은 울고 있었고, 직원들도 침통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보라 언니의 얼굴이 유독 이상했다. 슬픈 것 같기도 했지만, 어딘가 안도하는 표정처럼 보였다.
그때 보라 언니가 자기 팔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괜찮아. 하마터면 내가 죽을 뻔했네.”
그 말에 나는 얼어붙었다.
무슨 뜻일까.
그러더니 보라 언니는 또 말했다.
“꿈에 나온 그 돼지… 사실 죽은 돼지였어.”
그 순간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보라 언니가 말했던 돼지꿈은, 우리가 알고 있던 그런 좋은 돼지꿈이 아니었다.
꿈속에서 보라 언니 품에 안겨 있던 새끼 돼지 두 마리는 살아 있는 돼지가 아니었다. 죽은 돼지였다. 그리고 그 죽은 돼지를 안겨주고 간 남자, 뿌연 안개 속에서 아무 말 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진 그 남자는 사람이 아니었다.
저승사자였다.
그러니까 보라 언니가 나에게 판 꿈은 행운을 부르는 꿈이 아니었다. 죽음을 부르는 흉몽이었다.
보라 언니는 처음부터 그 꿈이 찜찜했던 것이다. 돼지가 나오는 꿈이라 좋은 꿈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죽은 돼지를 받는 꿈이었다. 그래서 아무에게나 팔아치우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 그때, 돈 때문에 힘들어하고 사람들 앞에서 거절하기 어려운 내가 눈에 띄었던 것이다.
보라 언니는 내 영정 사진 앞에서 홀가분한 듯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내가 올해 가장 잘한 일이 그 꿈 판 거네.”
그 말은 어떤 귀신보다도 무서웠다.
내가 산 것은 행운이 아니었다. 내가 산 것은 보라 언니에게 닥칠 죽음이었다. 겉으로는 돼지꿈이었다. 새끼 돼지 두 마리를 품에 안는 꿈이었다. 하지만 그 돼지들은 이미 죽어 있었고, 그것을 건네준 존재는 저승사자였다.
나는 그 꿈을 만 원에 샀다.
그리고 꿈을 산 뒤 정말 행운이 찾아왔다. 손님이 나에게 넘어왔고, VVIP 고객이 나를 선택했고, 3천만 원이라는 큰돈이 생겼다. 빚도 갚았다. 모든 것이 한순간에 풀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행운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 꿈이 불러온 것은 돈도, 복도, 새 출발도 아니었다. 죽음이었다.
어쩌면 그 짧은 행운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주어진 미끼였을지도 모른다. 불행한 삶을 끝내기 전, 잠깐 달콤한 희망을 보여준 것일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가 무서운 이유는 단순히 죽은 돼지가 나와서가 아니다. 저승사자가 나와서도 아니다.
정말 무서운 것은 사람의 악의다.
보라 언니는 그 꿈이 불길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찜찜했고, 자신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것 같았다. 그래서 그 꿈을 팔아넘겼다. 좋은 꿈처럼 포장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넘겼다.
더 무서운 것은 그 꿈을 팔고 난 뒤 보라 언니가 죄책감을 느낀 것이 아니라 안도했다는 점이다.
“하마터면 내가 죽을 뻔했네.”
“올해 가장 잘한 일이 그 꿈 판 거네.”
그 말 속에는 미안함이 없었다. 후회도 없었다. 오직 자신이 살았다는 안도감뿐이었다.
나는 죽었고, 보라 언니는 살았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은 만 원짜리 돼지꿈 거래에서 시작되었다.
살다 보면 누구나 운이 좋아지고 싶을 때가 있다. 일이 너무 안 풀리고, 돈에 쫓기고, 사람에게 상처받다 보면 작은 미신 하나에도 기대고 싶어진다. 누가 좋은 꿈을 꿨다고 하면 괜히 부럽고, 그 꿈을 사면 내 인생도 조금은 달라질 것만 같다.
하지만 꿈이라는 것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할 수 없다.
돼지가 나왔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꿈은 아니다. 품에 안겼다고 해서 반드시 복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그 돼지가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 누가 그 돼지를 건네주었는지. 그 꿈을 판 사람이 왜 굳이 나에게 팔려고 했는지. 그런 것들을 모른 채 남의 꿈을 사는 것은 어쩌면 남의 불행까지 함께 사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날 만 원을 주고 꿈을 샀다.
그리고 잠깐의 행운을 얻었다.
하지만 그 꿈의 진짜 이름은 행운을 부르는 꿈이 아니었다.
죽음을 부르는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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