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7년 미국 로어노크섬에 정착했던 영국 식민지 주민 115명이 3년 뒤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현장에는 단 하나의 단서 “CROATOAN”만 남아 있었고, 이후 학살설·원주민 합류설·초자연 현상설까지 이어지며 세계 역사상 가장 유명한 실종 미스터리로 남게 되었다.
로어노크 식민지 실종 사건
로어노크 식민지 사건은 1587년 영국인 약 115명이 현재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로어노크섬에 정착했다가, 1590년 총독 존 화이트가 돌아왔을 때 모두 사라져 있었던 사건이었다. 미국 초기 식민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미스터리 중 하나로 “잃어버린 식민지”라고 불린다.
사건 배경
1580년대 영국은 스페인보다 늦게 북아메리카 식민지 개척에 뛰어들었다. 월터 롤리 경이 엘리자베스 1세의 허가를 받아 버지니아 지역 개척을 추진했고, 로어노크섬은 그 첫 실험장이 되었다. 1585년에도 군사 성격이 강한 식민 시도가 있었지만 원주민과 갈등, 식량 부족, 보급 문제로 실패했다.

1587년 존 화이트가 이끄는 새 정착민들이 다시 도착했다. 이번에는 여성과 아이까지 포함된 가족형 식민지였다. 이들 중 존 화이트의 딸 엘리노어 데어가 딸을 낳았고, 그 아이가 영국인으로는 북아메리카에서 처음 태어난 것으로 기록된 버지니아 데어였다.
실종 과정
정착민들은 식량과 물자 부족을 겪었고, 존 화이트는 보급품을 가져오기 위해 영국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영국과 스페인 사이의 전쟁, 특히 스페인 무적함대 사태 때문에 화이트는 곧바로 돌아오지 못했다. 결국 3년 뒤인 1590년에야 로어노크섬으로 돌아왔다.

그가 본 것은 비어 있는 식민지였다. 시신도, 전투 흔적도, 급히 도망친 흔적도 없었다. 집들은 해체된 듯했고, 나무와 방책에는 “CROATOAN”, “CRO”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화이트는 이것을 정착민들이 크로아토안, 즉 오늘날 해터러스섬 쪽으로 이동했다는 표시로 해석했다. 그러나 폭풍과 항해 문제 때문에 그곳까지 확인하지 못하고 영국으로 돌아갔다.
가장 중요한 단서: CROATOAN
“CROATOAN”은 무서운 저주 문구라기보다 당시 그 지역 원주민 집단과 섬 이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존 화이트는 정착민들에게 만약 이동한다면 목적지를 표시하라고 했고, 위험에 처했다면 십자가 표시를 남기라고 알려두었다. 그런데 십자가 표시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서 단순 학살이나 납치보다는 계획적 이동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해석이 많다.
주요 가설
첫 번째는 크로아토안 원주민과 합류했다는 설이다. 현재 가장 유력하게 다뤄진다. 해터러스섬에서 유럽식 물건, 금속 가공 흔적, 유리·무기 관련 유물 등이 발견되었다는 주장이 이어졌고, 일부 연구자들은 정착민들이 원주민 사회에 흡수됐다고 본다. 다만 모든 학자가 “완전히 해결됐다”고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두 번째는 내륙 이동설이다. 존 화이트의 1585년 지도 《La Virginea Pars》에서 숨겨진 요새 표시가 발견되었고, 현재 버티 카운티 근처의 “Site X”에서 16세기 영국식 도자기 조각 등이 발견되었다. 이 때문에 일부 정착민이 해안이 아니라 내륙으로 이동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세 번째는 굶주림·질병·분산 생존설이다. 식량 부족, 보급 실패, 낯선 환경 때문에 집단이 흩어졌고 일부는 죽고 일부는 원주민 집단에 합류했을 수 있다는 절충형 해석이다.
네 번째는 학살설이다. 이후 제임스타운 정착민들이 로어노크 생존자들이 원주민에게 살해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로어노크 현장에서 전투 흔적이나 집단 무덤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래서 가능성은 있으나 결정적 증거는 부족하다.
영상·인터넷에서 많이 나오는 괴담식 해석
유튜브나 다큐에서는 “CROATOAN 저주”, “집단 증발”, “초자연적 실종”처럼 다루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역사 자료 기준으로 보면 가장 현실적인 해석은 초자연 현상보다 보급 실패 후 이동, 원주민 사회와의 합류, 일부 집단의 분산에 가깝다.

결론
로어노크 식민지는 흔히 “한순간에 사라진 미스터리”처럼 알려졌지만, 실제 단서들은 오히려 정착민들이 스스로 떠났다는 쪽을 가리킨다. “CROATOAN”이라는 글자, 전투 흔적의 부재, 해터러스섬과 내륙 지역의 유물은 모두 생존자들이 원주민 사회와 섞였거나 여러 방향으로 흩어졌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완전히 증명된 정답은 아직 없지만, 현재 가장 설득력 있는 결론은 로어노크 사람들은 증발한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이동했고, 일부는 크로아토안 사람들과 함께 살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