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 보광동 폐가 루리웹 사건 그 이후 벌어진 괴담, 보광동 폐가를 답사하던 청년이 찍은 한 장의 사진. 나무껍질 사이로 붉은 자국이 흐른 뒤, 그는 매일 밤 같은 검은 존재에게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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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무렵, 오래간만에 고향집에 내려갔다.
옷장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오래된 컴퓨터 한 대를 발견했다. 한동안 켜본 적도 없는 낡은 컴퓨터였다. 호기심에 전원을 넣고 예전 사진들을 하나씩 열어보다가, 문득 오래전 내가 즐겨찾기에 저장해두었던 사이트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 하나가 루리웹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다가 나는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내가 예전에 겪었던 일이 아직도 사람들 사이에서 괴담처럼 떠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웃음이 났다.
‘아직도 이 이야기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구나.’
하지만 곧 웃을 수 없게 되었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내용 중에는 맞는 것도 있었지만, 전혀 다르게 부풀려진 부분도 적지 않았다.
그 일이 있었던 건 약 8년 전이었다.
당시 나는 서울에 막 올라온 스무 살 청년이었다. 시골에서 자라 서울 생활이 낯설었고, 호기심은 많았다. 그때 나는 작은 오컬트 동호회를 운영하고 있었다. 거창한 단체는 아니었다. 다음 카페에 만든 작은 모임이었고, 회원들은 주로 폐가나 흉가, 미스터리 장소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주말이 되면 우리는 유명하다는 장소들을 찾아다녔다.
늘봄가든, 곤지암 정신병원 같은 곳도 다녀왔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했지만, 그때는 그저 특별한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그러던 중, 방송에서 하하가 언급했던 보광동의 폐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정확한 장소를 알아내려면 먼저 답사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당시 타고 다니던 작은 스쿠터를 몰고 직접 그곳을 찾아갔다.
그날은 하늘이 잔뜩 흐려 있었다.
폐가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 특유의 눅눅한 공기와, 오래 방치된 건물에서 나는 묘한 냄새가 주변에 깔려 있었다. 나는 외관을 중심으로 사진을 찍었다. 카페에 공지를 올리기 위해서였다.
“이번 주말 몇 시, 어디서 모여 출발합니다.”
늘 하던 방식이었다.
사진을 스무 장 정도 찍은 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PC방으로 향했다. 디지털카메라는 스쿠터 좌석 밑 수납공간에 넣어두었다.
새벽이 가까워졌을 무렵이었다.
같이 일하던 형이 밖에 비가 많이 온다고 했다. 스쿠터를 옮기라고 해서 밖으로 나갔고, 그때 문득 낮에 찍었던 사진들이 생각났다. 나는 수납공간에서 카메라를 꺼냈다.
손님이 뜸해진 새벽, 카메라를 PC에 연결했다.
사진은 총 스무 장 남짓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대부분의 사진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물감을 손으로 문질러놓은 것처럼 색이 번져 있었고, 데칼코마니처럼 형태가 뭉개져 있었다. 흔들린 사진도 아니고, 렌즈에 물이 묻은 것과도 달랐다.
무엇을 찍은 사진인지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런데 단 한 장만은 멀쩡했다.
그 사진에는 폐가 근처의 나무가 찍혀 있었다.
그리고 그 나무껍질 사이로 붉은 액체 같은 것이 흐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페인트인가 싶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붉은 자국은 나무 표면 전체에 칠해진 것이 아니라, 껍질 사이의 틈을 따라 스며나온 것처럼 보였다.
오래된 피가 나무 안쪽에서 배어나온 것 같은 모양이었다.
나는 그 사진을 루리웹에 올렸다.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누군가는 페인트라고 했고, 누군가는 물감이라고 했다. 또 누군가는 조작이나 합성이라고 말했다. 나 역시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상하긴 했지만, 인터넷에 올릴 만한 기묘한 사진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다음 날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시간이 오전 11시 50분쯤이었다. 씻고 잠을 청하려는 순간, 전화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전화를 받자 한 방송 제작진이라고 했다.
그들은 사진을 봤고, 자체적으로 확인해본 결과 합성 흔적은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더 이상한 건, 아침 일찍 직접 그 폐가 근처를 찾아가 나무를 확인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사진 속 붉은 자국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고 했다.
그들이 말하길, 만약 페인트였다면 밤새 내린 비에 그렇게 깨끗하게 사라지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이상한 일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후부터 시작됐다.
그날 이후 나는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악몽인 줄 알았다. 하지만 매일 반복됐다. 눈을 감고 잠이 들려는 순간, 몸이 굳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고,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가위였다.
그리고 항상 같은 존재가 나타났다.
그것은 아이가 아니었다.
떠도는 이야기에서는 검은 어린아이라고 알려졌지만, 내가 본 것은 성인 여성 정도의 크기였다. 옷은 입고 있지 않았다. 머리카락도 없었다. 피부는 흑인처럼 어두운 정도가 아니라, 정말 빛을 삼켜버린 것처럼 새까맸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알 수 없었다.
가장 끔찍했던 건 눈이었다.
눈 전체가 희게 떠 있었고, 눈동자는 물에 젖은 종이 위에 검은 사인펜을 찍은 것처럼 번져 있었다. 또렷한 눈동자가 아니라, 흰자 속에 검은 얼룩이 퍼진 것 같은 눈이었다.
그것은 늘 같은 방식으로 다가왔다.
내 팔을 붙잡고 흔들며 소리쳤다.
“왜.”
“왜.”
“왜.”
“왜.”
처음에는 너무 무서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공포보다 더 지독한 피로가 몰려왔다. 차라리 죽이든가, 아니면 나를 어떻게든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2주 동안 제대로 잠을 잔 적이 거의 없었다.
집에서 잘 수가 없어서 편의점 의자에 앉아 눈을 붙여보기도 했다. 밖에서는 귀신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잠깐 졸다가도 놀이기구에서 떨어지는 듯한 느낌으로 깨어나곤 했다.
더 괴로운 건 나 혼자만 그런 일을 겪은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당시 그 사진을 공유한 사람은 많아야 열 명 정도였다. 그런데 그들 중 일부도 비슷한 가위와 악몽을 겪었다고 했다. 몇몇 부모님들은 나에게 항의까지 했다. 왜 그런 사진을 공유했느냐는 것이었다.
억울했다.
나도 무서웠다.
나도 혼자 서울에서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는 곁에 가족이라도 있었지만, 나는 혼자였다.
가위는 점점 더 구체적인 환각으로 변해갔다.
당시 내가 살던 원룸은 침대에 누우면 현관문이 바로 보이는 구조였다. 가위가 눌리면 현관문이 열렸다. 그리고 어머니나 형이 들어왔다. 손에는 검은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그들은 장을 봐온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냉장고 앞에 서서 물건을 정리했다.

표정은 이상할 정도로 밝았다.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러다 화장실로 들어가 손을 씻고 나왔다.
그 순간, 그들은 더 이상 내 가족이 아니었다.
문밖으로 나온 것은 그 검은 존재였다.
그것은 전속력으로 나를 향해 달려왔다. 마치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 순식간에 침대 앞까지 와서 내 팔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또 소리쳤다.
“왜 그랬어.”
“왜.”
“왜.”
“왜.”
지금은 시간이 많이 지나 이렇게 글로 적을 수 있지만, 당시에는 정말 버티기 힘들었다. 살아 있는 게 괴로울 정도였다.
결국 나는 서울 생활을 정리했다.
고향 근처에는 아주 큰 절이 하나 있었다. 이름만 말하면 누구나 알 만한 절이었다. 방송에도 여러 번 나온 곳이었다. 나는 그곳에 들어가 몇 달을 지냈다.
절에서 생활하는 동안 청소도 하고, 스님들과 산에도 오르고, 그냥 하루하루 몸을 움직이며 버텼다.
이상하게도 절에서는 단 한 번도 가위에 눌리지 않았다.
가끔 악몽은 꿨지만, 서울에서처럼 그 존재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그렇게 4개월 정도 절에서 지낸 뒤, 나는 군대에 입대했다.
시간은 흘렀다.
어느새 8년이 지났다.
이제는 예전처럼 매일 떠올리며 살지는 않는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바쁘게 하루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완전히 잊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 사진은 아직도 가지고 있다.
다시 보고 싶지 않을 뿐이다.
가끔 생각한다.
그날 내가 그 폐가에 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 나무를 찍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이제는 괜찮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정말 가끔은 힘들다.
아주 가끔.
그리고 그 가끔이, 오늘 밤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