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자려고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혼자 소주를 조금씩 홀짝거리다가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라 적어본다.
전에 썼던 ‘새집 이사’ 이야기에 등장했던, 귀신을 본다는 녀석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다. 그 녀석은 할머니에게서 귀신이 싫어하는 문자 하나를 배웠다고 한다. 부적처럼 사용하는 문자였는데, 그것을 배우게 된 계기가 꽤 기묘하고 무서웠다.
그 녀석이 어렸을 때였다.
그 녀석의 할아버지는 시골에서 장의사 일을 하고 있었다. 지금처럼 전문 장례식장이나 상조회사가 일반화되기 전이었다. 사람이 죽으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천막을 치고 등을 달고, 꽃상여를 준비해 장례를 치르던 시절이었다.
장의사 일은 할아버지가 주로 맡았다. 당시에는 여자가 시신을 가까이하면 부정을 탄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할머니는 염과 같은 일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한다.
어느 여름방학, 그 녀석은 시골에 있는 할아버지 집에 놀러 갔다.
그런데 아이가 머물기에는 좋지 않은 시기였다. 마을에 갑작스럽게 초상이 났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손자를 다시 부모가 있는 집으로 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 녀석은 집에 가지 않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결국 할아버지가 포기했다.
대신 한 가지는 단단히 경고했다.
시신을 모셔두거나 염을 하는 광 근처에는 절대로 가지 말라는 것이었다. 어른들이 일을 하는 모습을 보려고 기웃거려서도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어린아이의 호기심을 말릴 수는 없었다.
그 녀석은 우연히 할아버지가 염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죽은 사람의 몸을 깨끗하게 닦고 얼굴에 분을 바르고, 수의를 입히는 모습이었다.

처음 보는 광경이었지만 그 녀석은 무서워하기보다 신기해했다.
그날 오후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모두 집을 비운 사이, 그 녀석은 혼자 마루에 앉아 할아버지가 하던 염을 흉내 내며 놀고 있었다. 수건으로 방바닥을 닦기도 하고, 옷가지를 가져와 누군가에게 수의를 입혀주는 시늉도 했다.
그렇게 혼자 놀고 있는데 어느 순간 젊은 여자 한 명이 마루 앞에 서 있었다.
언제 들어왔는지 알 수 없었다.
대문이 열리는 소리도 없었고, 마당을 걸어오는 발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여자는 이미 그 녀석 바로 앞에 서서 웃고 있었다.
그 녀석이 물었다.
“누구세요? 지금 할아버지랑 할머니 안 계시는데요.”
젊은 여자는 마루에 앉아 있는 아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꼬마야. 너 염도 할 줄 아니?”
여자는 웃고 있었다.

그 녀석은 자랑이라도 하듯 대답했다.
“네. 할아버지가 하는 거 봤어요.”
그러자 여자가 다시 말했다.
“그래? 그럼 나도 네가 염해주면 좋겠구나.”
그 녀석은 아무 생각 없이 대답했다.
“네. 아줌마도 해줄게요.”
바로 그 순간이었다.
담장 밖에서 개 한 마리가 미친 듯이 짖기 시작했다. 한두 번 짖는 것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향해 달려들기라도 하듯 낮고 거친 소리로 계속 짖어댔다.
그 녀석은 놀라서 담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잠깐이었다.
다시 앞을 바라보았을 때 젊은 여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마당에도 없었고 대문 밖으로 나가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 녀석은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곧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집으로 돌아왔고, 그날은 장례 준비로 모두가 바빴다.
할아버지는 밤늦게까지 밖에서 장례 일을 해야 했다. 할머니도 할아버지가 사용할 물건과 음식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결국 그 녀석은 방에서 혼자 자게 되었다.
시골집은 오래된 전통 한옥이었다. 방과 마루가 이어져 있었고, 방문은 나무살 위에 창호지를 바른 미닫이문이었다. 문을 잠그는 자물쇠도 없었다.
그 녀석은 혼자 이불을 덮고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갑자기 방문이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바람이 부는 줄 알았다. 그러나 흔들림은 점점 거세졌다. 누군가 밖에서 문을 붙잡고 미친 듯이 앞뒤로 흔드는 것 같았다.
잠에서 깬 그 녀석은 몸을 일으켰다.
“할아버지?”
대답이 없었다.
“할머니?”
역시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문은 계속 흔들리고 있었다.
그 녀석은 겁이 났지만 할머니가 돌아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천천히 방문 앞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문이 조금 열리는 순간이었다.
낮에 보았던 젊은 여자가 거의 날아오듯 방 안으로 들어왔다.
여자는 곧바로 그 녀석의 목을 움켜쥐었다.

가느다란 손가락이었지만 힘은 엄청나게 강했다. 어린아이가 아무리 몸부림쳐도 손이 떨어지지 않았다.
여자의 얼굴에서는 낮에 보였던 부드러운 미소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눈은 커다랗게 뜨여 있었고, 얼굴은 물에 불은 것처럼 창백하고 일그러져 있었다.
여자는 그 녀석의 목을 조르며 소리쳤다.
“거짓말했어!”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거짓말했어! 거짓말했어!”
그 녀석은 숨을 쉬지 못하고 캑캑거렸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눈앞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때 멀리서 할머니가 집으로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대문이 열리고, 마당으로 들어오는 발소리가 났다.
그 순간 여자는 사라졌다.
목을 조르던 손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 녀석은 방문 앞에 쓰러져 계속 기침을 했다.
방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방 안에서 자고 있어야 할 손자가 바닥에 엎드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으니 할머니는 크게 놀랐다.
할머니는 급히 방으로 들어와 그 녀석을 붙잡았다.
“무슨 일이냐? 왜 이러고 있느냐?”
그 녀석은 울면서 방금 있었던 일을 말했다. 그리고 낮에 마루에서 젊은 여자를 만났던 일도 모두 털어놓았다.
여자가 자신에게 염을 해달라고 했고, 자기가 해주겠다고 약속했다는 말까지 했다.
이야기를 들은 할머니의 얼굴이 굳었다.
할머니는 갑자기 그 녀석의 등을 때리며 소리쳤다.
“이 미친놈아. 네가 무슨 짓을 한 줄 아느냐?”
몇 번이나 등을 때리면서도 할머니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새벽이 가까워질 무렵 할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왔다.
할머니는 곧바로 낮부터 있었던 일을 모두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들은 할아버지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마을에서 일어난 일을 조용히 설명했다.
며칠 전부터 마을에 계속 초상이 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시기에 맞지 않는 줄초상이라며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근처 저수지에 여자 한 명이 빠진 것 같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아직 시신은 발견되지 않은 상태였다.
할아버지는 그 녀석이 보았다는 젊은 여자가 저수지에 빠진 여자의 혼령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시신을 찾지 못한 채 물속에 남아 있는 혼령이 스스로 염을 받기 위해 장의사를 찾아왔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은 마지막 순간까지 살고 싶다는 생각을 품은 채 죽기 때문에 한이 깊다고 했다. 숨을 쉬고 싶어도 쉴 수 없고, 물 밖으로 나오고 싶어도 나오지 못한다. 그래서 익사한 혼령은 산 사람을 향한 집착이 강해질 수 있다고 했다.
낮에 그 여자가 아이에게 염을 해달라고 부탁했고, 아이가 아무것도 모르고 약속을 했다.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여자가 다시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그 녀석을 마당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 굵은 소금을 한 바가지 가져와 아이의 머리와 어깨, 몸 주변에 뿌렸다. 마당에도 원을 그리듯 소금을 뿌렸다.
그런 다음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 절대로 저수지나 개울 같은 물가에 가지 마라.”
할아버지는 집 안으로 들어가 은수저 하나와 명주실을 가져왔다.
은수저의 손잡이부터 끝부분까지 명주실을 여러 번 단단하게 감았다. 그렇게 만든 수저를 그 녀석에게 건넸다.
“오늘 밤 이 수저로 방문을 걸어 잠가라. 무슨 소리가 들려도 절대로 문을 열어서는 안 된다. 누가 네 이름을 부르더라도 대답하지 마라. 아침에 내가 문을 열어도 된다고 말할 때까지 절대로 방 밖으로 나오면 안 된다.”
그 녀석은 전날 밤의 일이 너무 무서웠기 때문에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해가 지기 전에 방으로 들어갔다.
방문 손잡이 사이에 명주실을 감은 은수저를 걸어 문이 열리지 않도록 고정했다. 그런 다음 이불을 뒤집어쓴 채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저녁이 되었다.
처음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부엌에서 불을 지피는 소리가 들렸고, 마당에서는 할머니가 빗자루로 땅을 쓰는 소리가 났다. 소죽을 끓이는 냄새도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던 중 방문이 갑자기 덜컹거렸다.
한 번이었다.
잠시 뒤 문이 다시 흔들렸다.
이번에는 전날 밤처럼 거칠었다. 누군가 문밖에서 손잡이를 붙잡고 사정없이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명주실을 감은 은수저가 문 사이에서 흔들리며 딸깍거렸다.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러자 밖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열어!”
젊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문 열어! 열라고!”
방문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흔들렸다.
그 녀석은 이불 속에서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할아버지가 대답하지 말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한참 동안 문을 흔들던 여자는 갑자기 조용해졌다.
잠시 뒤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낮에 마루에서 처음 만났을 때와 똑같은 목소리였다.
“꼬마야.”
그 녀석은 숨을 죽였다.
“꼬마가 나 염해준다고 약속했잖아.”
마치 다정하게 타이르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문 좀 열어주렴.”
그 녀석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아무것도 듣지 못한 척했다.
그러자 방문이 다시 미친 듯이 흔들렸다.
“열어!”
여자의 목소리가 찢어질 듯 높아졌다.
“열어! 문 열어!”
기묘한 점은 그토록 방문이 흔들리고 여자가 소리를 지르는 동안에도 집 밖에서는 평소와 똑같은 생활 소음이 들렸다는 것이었다.
마당에서는 할머니가 계속 빗자루질을 하고 있었다.
아궁이에서는 소죽을 끓이는 소리가 났다.
동네 할머니 한 명이 찾아와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도 들렸다.
바로 옆방과 마당에서 사람들이 평범하게 생활하고 있는데도, 방문 앞의 여자가 내는 소리를 아무도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녀석은 울면서 이불 속에서 떨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방문을 흔드는 소리는 한참 동안 이어졌다가 어느 순간 완전히 멈췄다.
그 녀석은 긴장이 풀리자 그대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방 안은 밝아져 있었다.
문밖에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나와도 된다.”
그 녀석은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혹시 여자가 할아버지 목소리를 흉내 내는 것은 아닐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다시 문을 두드리며 이름을 불렀다. 그제야 그 녀석은 조심스럽게 방문에 걸어두었던 은수저를 걷어냈다.
문밖에는 정말 할아버지가 서 있었다.
며칠 뒤 저수지에서 실종되었던 젊은 여자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시신은 그 녀석의 할아버지가 아닌 다른 마을의 장의사가 거두어 염을 했다고 한다. 여자가 제대로 장례를 치른 뒤에는 더 이상 방문을 흔들거나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 사건은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 일을 겪은 뒤부터 그 녀석은 귀신을 보기 시작했다.

길을 걷다가도 죽은 사람이 보였고, 아무도 없는 방구석에 누군가 서 있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그 녀석에게는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다.
그 녀석은 귀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귀신은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 때문에 살아 있는 사람을 질투한다고 했다. 자신은 더 이상 먹을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야기할 수도 없다. 그런데 산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누리고 있기 때문에 질투하고 괴롭힌다는 것이다.
그 녀석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귀신은 생각보다 쪼잔한 존재라고 했다.
특히 어린아이들은 겁을 먹기 쉽기 때문에 귀신들이 재미 삼아 더 자주 괴롭힌다고 했다.
갑자기 눈앞에 얼굴을 들이밀거나, 어두운 골목에서 따라오거나, 자다가 눈을 뜨면 천장에 붙어 내려다보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 녀석은 너무 어린 나이부터 그런 것들을 계속 보았다.
매일 겁에 질리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아무도 없는 곳을 보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점점 아이의 행동이 이상해지자 할머니는 손자가 단순히 겁이 많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 할머니가 귀신이 싫어하는 문자 하나를 알려주었다.
종이에 적어 몸에 지니거나, 방문과 창문 근처에 써두면 귀신이 가까이 오지 못하는 문자라고 했다. 정확히는 글자라기보다 부적에 쓰이는 문양에 가까웠다고 한다.
그 녀석은 그 문자를 배우고 난 뒤부터 집 안 곳곳에 낙서처럼 써두었다.
공책에도 쓰고, 방문 뒤에도 쓰고, 책상 밑에도 썼다. 귀신이 보이면 손가락으로 허공에 그 문자를 그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것이 실제로 효과가 있었는지, 아니면 너무 오랫동안 귀신을 보면서 익숙해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지금의 그 녀석은 귀신을 보아도 별로 놀라지 않는다고 한다.
길 한쪽에 죽은 사람이 서 있어도 그냥 지나간다.
방구석에 누군가 웅크리고 있어도 모른 척한다.
가끔 귀신이 자신을 놀라게 하려고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도 귀찮다는 듯 바라볼 뿐이다.
어릴 때부터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에 이제는 귀신을 보아도 그저 그러려니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녀석은 아직도 물가에는 가까이 가지 않는다.
특히 사람이 빠져 죽었다는 저수지나 깊은 강, 밤바다는 피한다고 한다.
어린 시절 방문을 흔들며 염을 해달라고 했던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아직도 잊히지 않기 때문이다.
“꼬마야. 나 염해준다고 약속했잖아.”
그 목소리만큼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