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건명
桃井望 사건 / 나가노현 시오지리시 아베크 변사 사건 / 塩尻アベック不審死事件이었다.
2002년 10월 12일 밤, 일본 나가노현 시오지리시의 나라이고와 강변에서 당시 인기 AV 배우였던 모모이 노조미, 본명 와타나베 요시미와 남성 지인 사카이 히로키가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었다.
일본에서는 이 사건이 처음에는 무리심중, 즉 남성이 여성을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처럼 보도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후 여러 정황과 유족의 문제 제기, 그리고 2007년 민사판결 때문에 제3자에 의한 타살 가능성이 강하게 남아 있는 미해결 사건으로 알려져 있었다.
◆ 모모이 노조미는 누구였나
모모이 노조미는 예명이었고, 본명은 와타나베 요시미로 알려져 있었다.

그녀는 1978년 9월 23일생이었고, 사망 당시 나이는 24세였다. AV 배우로 활동했으며, 짧은 활동 기간에도 꽤 많은 작품에 출연했던 인물이었다. 2002년에는 MINX라는 AV 아이돌 유닛으로도 활동하고 있었다.
프로필상으로는 도쿄 출신처럼 소개된 경우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나가노현 쪽에서 성장한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도쿄로 올라갔고, 연예·무대 활동에도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져 있었다.
그녀는 단순히 AV 배우로만 활동하려 했던 사람이 아니었다. 일본 자료에는 본명으로 극단 무대에 출연했던 기록도 있었고, 장래에는 연기나 무대 쪽으로 나아가고 싶어 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 사건 발생 장소
사건이 일어난 곳은 일본 나가노현 시오지리시 히로오카 고바라 부근의 나라이고와 강변이었다.

2002년 10월 12일 밤 8시 55분쯤, “강변에서 차가 불타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었다. 현장은 JR 시오지리역에서 북서쪽으로 약 3km 떨어진 곳이었다. 주변에는 민가가 거의 없었고, 밤에는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조용한 강변이었다.
불타고 있던 차량은 사카이 히로키의 차였다. 불이 꺼진 뒤 차량 안에서는 남성 시신이 발견되었고, 차량 밖 약 10m 떨어진 풀숲 근처에서는 여성 시신이 발견되었다. 이 여성이 바로 모모이 노조미였다.
◆ 발견 당시 상황
발견 당시 상황은 매우 이상했다.
사카이 히로키는 불탄 차량 안에서 발견되어 있었다. 반면 모모이 노조미는 차량 안이 아니라 차량 밖에서 발견되어 있었다. 두 사람이 함께 차 안에서 사망한 것이 아니었다.
모모이 노조미의 몸에는 여러 군데 흉기에 찔린 상처가 있었다. 그녀의 직접 사인은 이 흉기 상처와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사카이 히로키는 차량 안에서 심하게 훼손된 상태였기 때문에 사인을 명확히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차량은 인화성 물질에 의해 불탄 것으로 보였고, 차 안에서는 칼이 발견되었다는 내용도 있었다.
문제는 그 칼이 사카이 히로키의 왼손 부근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이었다. 사카이 히로키는 오른손잡이였다고 알려져 있었다. 이 점은 나중에 무리심중설에 의문을 제기하는 중요한 정황 중 하나가 되었다.
◆ 처음 경찰의 판단
초기 경찰은 무리심중 가능성과 살인 가능성을 모두 보고 수사한다고 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살인사건 수사본부가 설치되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논란이 있었다. 유족과 지인들은 이 사건을 단순한 무리심중으로 처리하려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강하게 반발했었다.
경찰은 사카이 히로키가 모모이 노조미를 살해한 뒤 차에 불을 지르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을 봤던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런 설명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주장했었다.
두 사람 모두 자살할 이유가 뚜렷하지 않았고, 사건 직전까지도 평소처럼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는 정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 무리심중으로 보기 어려웠던 이유
이 사건이 지금까지도 미해결 타살 의혹 사건으로 남아 있는 이유는 여러 이상한 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 모모이 노조미는 사건 이후에도 예정된 일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 사카이 히로키 역시 사건 직전까지 친구들과 연락하고 있었고,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 두 사람 모두 사망할 이유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다는 주장이 있었다.
● 모모이 노조미는 차량 밖에서 발견되어 있었다.
● 사카이 히로키는 차량 안에서 발견되어 있었다.
● 두 사람 모두 맨발이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 신발은 현장이 아니라 다른 장소에 있었다는 내용도 있었다.
● 칼은 오른손잡이였던 사카이의 왼손 부근에서 발견되어 있었다.
● 차량에 불을 지른 인화성 물질의 용기 등이 명확히 발견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었다.
● 현장이 화재 진압 과정에서 훼손되어 제3자의 흔적 확인이 어려워졌다는 문제도 있었다.
이런 점들 때문에 “남자가 여자를 죽이고 자살했다”는 단순한 설명으로는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 두 사람의 관계
모모이 노조미와 사카이 히로키는 같은 고등학교 선후배 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두 사람은 2001년 5월쯤 공통 지인을 통해 다시 가까워진 것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이후 연락을 주고받았고, 2002년 들어 모모이 노조미가 나가노현 시오지리 쪽으로 자주 찾아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단순한 연인 관계였는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일본 자료에 따르면 당시 모모이 노조미는 도쿄에서 AV 업계 관련 인물과 동거 중이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사카이 히로키에게도 오래 사귄 여자친구가 있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한 연인 관계라기보다, 고향과 연결된 친밀한 지인 또는 복잡한 관계였을 가능성이 있었다.
◆ 사건 직전 행적
사건 며칠 전, 모모이 노조미는 도쿄에서 나가노현 시오지리로 내려와 사카이 히로키를 만났던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10월 9일쯤 두 사람이 만났다는 정리가 있었고, 10월 11일에는 모모이 노조미가 지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는 내용도 있었다.
그녀는 사건 이후의 일정에 대해서도 말했던 것으로 전해져 있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그녀가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었다.
사카이 히로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사건 직전까지 평소처럼 사람들과 연락하고 있었고, 갑작스럽게 살인 후 자살을 할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는 증언들이 있었다.
◆ 유족과 친구들의 반발
사건 후 사카이 히로키의 유족과 친구들은 강하게 반발했었다.
그들은 “사카이가 모모이를 죽이고 자살했을 리 없다”고 주장했었다. 사카이는 살인범이 아니라 피해자였다는 입장이었다.
2002년 11월에는 유족 측이 살인죄로 고소하려 했고, 2003년 1월 17일에는 피의자 불상 살인 혐의 고소가 수리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친구들은 사건의 재수사와 수사본부 설치를 요구하는 서명운동도 벌였었다. 약 7,300명분의 서명이 경찰에 전달되려 했고, 이후 약 1만 명분의 서명이 당시 나가노현 지사에게 전달됐다는 내용도 있었다.
하지만 경찰의 수사 방향은 크게 바뀌지 않았고, 결국 형사사건으로 범인이 특정되지는 않았다.
◆ 수사본부 설치 요구
유족은 경찰에 살인사건 수사본부를 설치해 달라고 요구했었다.
하지만 경찰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족은 행정소송까지 냈지만, 2004년 6월 나가노지방법원은 수사본부 설치는 경찰 내부의 수사 방식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청구를 각하했었다.
즉, 법원이 “수사본부를 반드시 설치하라”고 명령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 때문에 유족과 지인들은 사건이 충분히 수사되지 않았다고 느꼈고, 이 사건은 더욱 큰 의혹을 남기게 되었다.
◆ 2007년 민사판결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은 2007년 1월 23일에 있었던 민사판결이었다.
사카이 히로키의 유족은 생명보험사를 상대로 보험금 지급 소송을 냈었다. 보험사 측은 사카이가 자살했거나 무리심중을 벌였을 가능성을 주장하며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법원은 여러 정황을 검토한 끝에, 사카이 히로키가 스스로 죽었다고 보기 어렵고, 제3자에게 살해된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렸었다.
이 판결은 형사재판에서 범인을 처벌한 판결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카이가 모모이를 죽이고 자살했다”는 초기 무리심중설에 큰 의문을 남긴 판단이었다.
그 결과 이 사건은 단순 변사나 무리심중이 아니라, 제3자 타살 가능성이 인정된 미해결 사건으로 다시 주목받게 되었었다.
◆ 의혹 1 — AV 업계 관련설
이 사건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의혹 중 하나는 AV 업계 관련설이었다.
모모이 노조미는 당시 활동이 한창이었던 배우였다. 그런데 일부 일본 자료와 사건 해설에서는 그녀가 은퇴 문제나 활동 방향 때문에 업계 관계자와 갈등이 있었을 가능성을 언급했었다.
또한 그녀가 도쿄에서 동거하던 인물이 AV 업계와 관련된 사람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 때문에 “업계 내부 문제에 휘말린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었다.
하지만 이 설은 공식적으로 입증된 것은 아니었다. 범인이 특정된 적도 없었고, 업계 관계자가 기소된 적도 없었다. 따라서 AV 업계 관련설은 어디까지나 의혹으로 남아 있었다.

◆ 의혹 2 — 금전 문제설
사카이 히로키 쪽에도 금전 문제나 비즈니스 관련 의혹이 있었다.
일본 정리 자료에는 카드론, 금전 계약, 다단계 비즈니스 같은 이야기가 언급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사카이 쪽의 인간관계나 금전 문제 때문에 사건이 벌어진 것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 공식적으로 확인된 범행 동기는 아니었다. 금전 문제가 실제 범행과 연결됐는지, 또는 단순한 주변 정황에 불과했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 의혹 3 — 복수의 제3자 범행설
또 다른 설은 복수의 제3자가 두 사람을 살해한 뒤 현장을 조작했다는 것이었다.
이 설은 다음과 같은 정황에서 나왔었다.
● 두 사람이 모두 맨발이었다.
● 차량 안과 밖에 시신 위치가 나뉘어 있었다.
● 차에 불이 붙어 있었다.
● 사카이의 사인을 명확히 확인하기 어려웠다.
● 칼의 위치가 이상했다.
● 인화성 물질 사용 정황이 있었지만 현장에 남은 물건이 명확하지 않았다.
● 화재로 증거가 많이 사라졌을 가능성이 있었다.
이런 점 때문에 누군가가 두 사람을 다른 장소에서 제압하거나 살해한 뒤, 차량 화재로 증거를 없애려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다.
◆ 왜 미해결로 남았나
이 사건이 미해결로 남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첫째, 초기 현장 보존이 완벽하지 않았다. 차량 화재가 있었고, 화재 진압 과정에서 현장이 훼손될 수밖에 없었다.
둘째, 경찰이 살인사건 수사본부를 설치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족과 지인들은 사건이 충분히 수사되지 않았다고 주장했었다.
셋째, 사카이 히로키가 가해자라는 식의 초기 시각이 사건의 방향을 흐렸다는 비판이 있었다.
넷째, 모모이 노조미가 AV 배우였다는 점 때문에 사건이 일반적인 살인사건처럼 크게 다뤄지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었다.
다섯째, 시간이 지나면서 증거와 기억이 흐려졌고, 결국 형사적으로 범인을 특정하지 못한 채 사건이 남게 되었다.
◆ 일본 영상 자료
이 사건은 일본 유튜브에서도 여러 번 다뤄졌었다. 대부분은 공식 수사 영상이 아니라, 미해결 사건 해설 영상이나 고찰 영상이었다.
● 【ゆっくり解説】セクシー女優・桃井望はなぜ事件に巻き込まれ…
모모이 노조미 사건의 흐름과 의혹을 정리한 일본어 해설 영상이었다.
● 【桃井望さん変◯事件 ※再編集版】
사건 현장, 경찰 수사, 의문점 등을 정리한 일본어 사건 고찰 영상이었다.
● 長野アベック変死事件1 導入編 / ミステリーアワー
나가노 아베크 변사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사건의 기본 구조를 설명한 영상이었다.
● 長野アベック変死事件2 諸説検討編 / ミステリーアワー
무리심중설, 제3자 타살설, 업계 관련설 등을 비교한 영상이었다.
● 心霊調査 桃井望 謎の焼死事件 1/2
심령 조사 형식으로 사건을 다룬 영상도 있었다. 다만 이런 영상은 사실 검증용 자료라기보다는 방송·오컬트 콘텐츠에 가까웠다.
◆ 사건의 핵심
이 사건의 핵심은 단순했다.
모모이 노조미와 사카이 히로키는 2002년 10월 12일 밤, 나가노현 시오지리시의 강변에서 숨진 채 발견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남성이 여성을 살해하고 자살한 무리심중처럼 보였지만, 현장에는 이상한 점이 많았다. 여성은 차량 밖에서 발견되어 있었고, 남성은 차량 안에서 불탄 채 발견되어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사망 전후 상황이 이상했고, 주변 사람들은 자살이나 무리심중을 강하게 부정했었다.
이후 2007년 민사판결에서는 사카이 히로키가 제3자에게 살해된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판단이 나왔었다.
하지만 형사적으로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모모이 노조미 사건은 지금도 일본의 대표적인 미해결 변사·타살 의혹 사건으로 남아 있었다.